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오피니언

오피니언

창업 실패에 관심이 필요한 시기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스타트업 데이타베이스 기업 더브이씨 조사에 의하면, 2022년부터 폐업하는 스타트업들이 매해 증가하고 있다.33.8%. 2022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의 혁신창업생태계 대시보드’가 신생 기업 5년 생존율로 제시한 수치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 수치를 무의미한 명목 생존율로 받아들인다. 전문가들은 운영을 중단했지만 폐업 신고를 안 한 스타트업과 오랫동안 자본 잠식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스타트업들을 제외하면 실제 생존율은 33.8%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스타트업에게 실패는 낯설지 않다. 스타트업은 급진적인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작은 시장을 파고든다. 본질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한다. 소수 스타트업만이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고 대부분 창업자들은 실패로 끝난다. 이런 측면에서 실패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주제일 것이다. 실패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처럼 창업 실패는 흔한 주제이지만,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는 성공과 같은 긍정적인 성과에 유난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 실패가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산발적이긴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관련 영역에서는 창업 실패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창업자들은 실패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필자는 창업자들이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겪은 애로 사항을 듣고 이를 이야기로 옮기는 일을 지난 몇 년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창업 실패를 둘러싼 그들의 시선이 변하는 것을 부쩍 느낀다. 그들은 “보통 관계자들은 창업 성공 이전에 겪은 여러 번의 쓰라린 실패나 회사를 운영하며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지만, 저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실패와 재도전의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다”라며, “이는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창업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창업 재단이 창업자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초대된 창업자들은 실패의 시간을 반추하면서 실패를 피하는 그들만의 노하우와 조언을 들려주었다. 행사가 축제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던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행사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실패의 가치를 공동체의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스타트업 생태계를 돕는 조력자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창업 실패를 해석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 혹한기가 절정에 달했던 작년 초. 법무법인 미션은 창업 여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조망한 세미나 ‘스타트업, 뜨거운 안녕’을 열었다. 세미나에는 창업자·투자자·정책 입안자 등 생태계의 다양한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세미나는 스타트업의 파산과 창업자의 개인 회생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었다. 이는 기존 창업 행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제였다. 사실 실패는 창업에서 가장 흔한 결과이기에 해당 법률 정보는 창업자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창업 실패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는 세미나에 참석자들이 방문해 줄까 하는 우려와 달리, 세미나는 성황리에 끝났다. 적지 않은 참석자들은 세미나에 대한 만족감과 더불어 이런 자리가 왜 더 일찍 마련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과거 기업의 성공 전략에 집중했던 학계 역시 실패의 가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최근 창업 실패를 주제로 한 논문과 서적들이 하나둘 출간되고 있다. 2021년 개소한 KAIST 실패연구소는 실패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담긴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고 대중에게 열린 행사를 개최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창업 선도국, 창업자 실패 생태계 자산으로 내재화 중 창업 선도국들은 창업자들의 실패를 포용하고 그것을 생태계의 자산으로 내재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페일콘(FailCon)은 창업자와 관계자들이 모여 실패를 이야기하고 교훈을 공유하는 콘퍼런스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글로벌 스타트업은 실패를 혁신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글로벌 모바일 게임 개발사 슈퍼셀(Supercell)은 프로젝트에 실패한 팀에게 그동안의 노력과 기여를 인정하는 실패 축하 파티를 열어 준다. 국내 금융 스타트업 토스는 프로젝트의 실패를 일회성 이벤트로 치부하지 않고 과정을 낱낱이 기록해 사내에 공유한다. 이는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혁신의 토대로 활용하기 위한 활동이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성공을 거둔 소수 창업자와 스타트업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는 분명 여러 장점이 있다. 인상적인 창업 성공 스토리는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더불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상징적인 창업자들은 수많은 후배 창업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다수 창업자는 실패를 경험한다. 이것이 창업 실패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같은 이유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연쇄 창업자들은 창업 실패에 인색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세에 변화를 바란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창업 실패를 매몰 비용이 아닌 유익한 교훈이 가득한 자산으로 바라보고 내재화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25.09.15 11:23

4분 소요
“구글, 반독점 소송서 최악은 피했다”...빅테크 둘러싼 국제 갈등은 여전 [한세희 테크&라이프]

산업 일반

구글이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구글이 가진 온라인 검색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해소하기 위해 크롬 브라우저를 매각할 필요까진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구글은 지난해 미국 법무부와 소송에서 온라인 검색 시장 독점 사업자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구글의 독점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당초 법무부가 법원에 제시한 안은 구글이 만든 브라우저 크롬 매각을 비롯해, ▲안드로이드에서 구글 검색 우대 금지 ▲사용자 검색 데이터 외부 제공 ▲기본 검색 엔진 탑재 거래 금지 ▲검색 광고 노출 순위 투명성 제고 ▲유튜브, 제미나이 등 다른 구글 서비스 우대 금지 ▲다른 브라우저 출시나 투자 금지 등이었다. 이런 조치로도 독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구글의 모바일 운용체계(OS) 안드로이드 매각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법무부 입장이었다. 크롬은 구글의 검색 시장 지배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주소창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바로 구글 검색으로 이어진다. 브라우저를 통해 수집한 사용자 행태 정보는 구글 검색과 광고를 개선하는 밑바탕이 된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다른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깊은 해자를 구글에 만들어줬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조차 이런 격차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검색 서비스 ‘빙’이 구글만큼 좋아지기 어렵다”고 법정에서 증언할 정도였다. 크롬 매각 여부는 이번 판결의 최대 관전 포인트였다. 크롬을 매각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면, 구글의 검색 생태계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을 터다. 오픈AI나 퍼플렉시티 같은 AI 기업들은 크롬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9월초 미국 워싱턴DC. 법원에서 나온 판결은 구글의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주는 내용이었다. 작년 말 구글에게 ‘독점 사업자’라는 판결을 내린 같은 판사가 후속 조치인 규제 해소 방안에 대해선 구글 입장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구글이 크롬을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또 애플이나 삼성전자 같은 주요 파트너 기업들과 검색 엔진 탑재 관련 금전적 계약도 맺을 수 있다고 결정했다. 독점 소송 당시 구글이 애플이나 삼성전자 등 모바일 브라우저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선탑재되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것이 논란이 됐다. 재판 과정에서 구글이 애플 사파리 브라우저 주소창의 기본 검색 엔진 자리를 사는데 2022년 한 해에만 200억달러(약 27조 50000억원)를 지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애플 영업이익의 17.5%, 구글 매출의 1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독점 해소책의 일환으로 이 같은 거래는 금지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판사는 이 역시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독점적 기본 검색 엔진 채택을 전제로 한 거래는 하지 못한다. 한편으로, 법원은 구글이 검색과 관련된 데이터를 다른 기업과 공유하도록 했다. 이 같은 데이터는 그간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앞서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법원은 정부가 제기한 급진적 방안들은 대부분 배제하고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다. 기업 분할이 시장 경쟁을 회복하는데 필수적 조치임을 법무부가 입증하지 못했다고 법원은 보았다. 또 크롬이 매각되면 제품 품질과 소비자 후생이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구글이 검색 엔진 탑재 관련 금전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휴대폰이나 브라우저 기업들에게 손실을 입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어폭스 브라우저를 운영하는 모질라재단은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구글과의 계약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광고 시장도 독점 사업자하지만 구글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구글은 검색과 별개로 온라인 광고 시장 독점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구글은 온라인 광고를 게재하기 원하는 광고주와 광고를 싣고자 하는 매체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온라인 광고 기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가 언론사 웹페이지나 커뮤니티 등에서 보는 온라인 광고는 대부분 구글의 이 광고 거래소 기술에 의존한다. 이 사업은 지난 2분기 구글 매출의 10% 정도인 71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난 4월 미국 연방 법원은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 독점 사업자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구글이 광고 사업 일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안을 들고 나왔다. 이어 9월 초엔 유럽연합(EU)이 “구글이 온라인 광고 기술 분야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29억5000만유로의 벌금을 물렸다. 약 4조8000억원의 엄청난 규모다. 이는 EU 역사상 두번째로 큰 반독점 관련 벌금이다. 온라인 광고 사업 일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조치는 차별적이다. 불공정한 처벌을 무효화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시작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행동에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는 조항이다. 물고 물리는 디지털 국제관계학국내에서도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 독점 사업자라 규정했지만, 외국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 반면 EU는 미국과의 관세 협정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음에도 구글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며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디지털 플랫폼이 단순한 온라인 서비스를 넘어 사회 인프라와 안보 문제가 되어 가는 현실에서 똘똘한 IT 기업을 키우지 못한 유럽의 고민이 묻어난다. 디지털 플랫폼 시장을 두고 미국과 중국, 미국과 유럽, 유럽과 중국이 서로 물고 물리며 경쟁하고 견제하는 양상이다. AI의 발달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구도를 더욱 혼란하게 한다. 구글이 크롬 매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생성형 AI 발달에 힘입어 기존의 검색 시장이 흔들릴 것이란 예측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숨가쁘게 변하는 기술과 물고 물리는 국제 사회의 상호 견제로 세상이 어지럽다. 남들이 넘보지 못한 차별화된 기술과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한 자세, 이를 뒷받침할 정책 역량이 모두 필요한 시기다.

2025.09.14 14:03

4분 소요
K브랜드에 기회의 땅 ‘동남아시아’는 더 이상 없다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젊음은 언제나 시장의 변화를 이끈다. 동남아시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라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산업과 소비 구조를 재편하는 거대한 동력이다. 특히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은 제품 검색부터 구매와 결제까지 모든 과정을 온라인에서 해결하며, 브랜드 선택 기준에서도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 정체성, 가치, 경험을 요구한다.동남아시아는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기에 가장 역동적인 무대다. 약 6억 7천만 명에 달하는 아세안(ASEAN) 인구 중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이며,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는 젊은 노동력과 신흥 중산층 소비층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이 거대한 Z세대 집단은 한국의 K-뷰티·K-콘텐츠·K-푸드 등 K-브랜드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Z세대 소비 패턴의 여러모로 다르다. 첫째, 디지털 중심성이다. 동남아 Z세대의 70%는 제품 탐색과 구매를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한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는 Z세대의 90% 이상이 유튜브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를 결정한다는 조사도 있다. 구글·틱톡·인스타그램은 사실상 쇼핑의 출발점이 되었고, 인플루언서의 추천 한마디가 소비 흐름을 바꾼다.둘째, 가성비와 감성의 공존이다.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급한다. 태국과 베트남에서 K-뷰티 제품이 단순한 화장품을 넘어 자기표현의 도구로 소비되는 이유다. 특정 아이돌이 사용하는 립스틱, K-드라마 속 의상은 곧바로 Z세대의 위시리스트에 오른다.셋째, 가치소비의 확산이다.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에 민감한 이 세대는 친환경, 공정거래, 비건·할랄 인증 등을 구매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단순한 디자인이나 기능을 넘어 ‘이 브랜드가 내 가치관과 맞는가?’가 소비의 최종 판단을 좌우한다.K-브랜드, 프리미엄 이미지 갖춰야한국 브랜드는 이미 강력한 문화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 같은 K-팝 아티스트는 동남아 전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협업하는 브랜드는 곧바로 소비자의 주목을 받는다. 실제로 베트남 화장품 시장에서 K-뷰티 점유율은 22%에 달하며, 인도네시아 15~25세 여성의 62%가 한국 화장품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다.또한 K-드라마와 예능이 넷플릭스·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한국 브랜드는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문화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한국 화장품은 피부를 관리하는 도구를 넘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삶을 경험하는 수단으로 소비된다. 이는 Z세대의 경험 중심 소비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동남아 로컬 브랜드는 K-브랜드를 빠르게 추격 중이다. 인도네시아의 ‘와르다’(Wardah)는 할랄·비건 인증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태국의 로컬 스낵 브랜드들도 Z세대의 기호와 문화를 반영해 K-푸드와 정면 경쟁한다.중국 브랜드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틱톡샵,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플랫폼을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Z세대 소비자를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빠른 트렌드 복제전략으로 K-뷰티나 K-패션의 인기 제품을 즉각 모방하며 시장을 잠식한다.이런 환경에서 K-브랜드가 과거의 문화적 인기에만 기대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K-브랜드가 선택해야 할 세 가지 전략첫째, 콘텐츠와 브랜드의 통합이다. K-콘텐츠는 여전히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다. 브랜드가 이러한 콘텐츠와 결합할 경우, 제품은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문화적 경험과 동일시되는 상징적 가치를 얻는다. 이는 가격 경쟁을 회피하고, Z세대의 정체성 소비와 직접 연결되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둘째, 가치소비에 부합하는 ESG 실천이 있어야 한다. Z세대의 소비 결정에는 환경적·사회적 요인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친환경 포장재, 비건·할랄 인증 제품,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 캠페인은 브랜드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체계를 제시한다. 이러한 ESG 기반 접근은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뿐 아니라 장기적 신뢰 구축에도 기여한다.셋째, 옴니채널 경험의 제도화이다. 팝업스토어와 체험형 플래그십 매장은 단순한 판촉 공간이 아니라, Z세대가 스스로 브랜드를 증폭시키는 플랫폼이 된다. 이들은 SNS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이는 곧바로 브랜드 충성도로 환원된다. 따라서 옴니채널 전략은 단순한 판매 채널 다변화가 아니라, Z세대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 생태계 구축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동남아시아 Z세대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그들은 트렌드를 창조하고 확산시키는 참여형 소비자(prosumer)다.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정체성과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다.K-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K-팝과 K-드라마의 문화적 자산에 ESG와 디지털 경험을 결합해, 단순 제품을 넘어선 경험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동남아 시장에서의 승부는 결국 누가 Z세대를 더 빠르게, 더 깊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세계에서 가장 젊은 소비 시장인 동남아시아. 한국 기업이 문화적 매력과 지속가능한 가치를 결합한 전략으로 대응한다면, 이 시장은 앞으로도 K-브랜드의 기회의 땅으로 남을 것이다.

2025.09.14 10:01

4분 소요
5가지를 갖췄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모두가 성공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은 성공이 아닌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 포함)는 100만8282명에 달한다. 1995년 관련 통계 이래 폐업 신고 사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것은 이제 옛말일까. 지난 수십 년간 성공한 사람들을 분석해 온 학자들과 경영 컨설턴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성공은 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서는 공통된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부와 명예의 이면에는 뚜렷한 공통점과 전략이 존재한다.성공한 사람들은 반드시 5가지를 갖고 있다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낮춰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고민·노력·쇄신 등이 숨겨져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우선 ‘왜’에서 출발하는 목적 중심의 사고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이 주창한 ‘골든 서클’ 이론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보다 ‘왜’ 하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이유로 애플을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는 단순히 전기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유로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구현했다.목적 중심의 사고는 개인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이끌 뿐 아니라 직원과 고객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낸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의 비전과 개인의 신념이 일치할 때 직원의 몰입도는 3배 이상 높아진다. 목적과 비전이 수반될 때 인간은 비로소 더 진한 동기부여를 느끼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회사든 ‘왜’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여기에서 ‘왜’는 단순한 이기심에 그쳐서는 안 된다. 타인, 더 나아가서는 세상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크게 성공을 이룬 개인이나 기업은 하나같이 ‘왜’에서 출발하는 목적 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다. 직원들 또한 그 명분을 이루기 위해 동참한다.성공한 사람들은 ‘결심’보다 ‘루틴’을 더 신뢰한다. 열정은 식기 마련이지만 시스템은 규칙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늘 회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는다. 결정이라는 행위를 최대한 줄여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서다. 이런 습관은 ‘결정 피로’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실제로 오랜 시간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리더들에게는 옷·식사·출근 시간 같은 반복적 사안들을 단순화하는 것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브 잡스도 늘 같은 블랙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 일상에서 반복되는 선택을 미리 시스템화해 둔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정신적 에너지는 더 중요한 전략적 판단·창조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성공한 사람들은 아침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버진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매일 일출 전에 운동을 시작한다. 삼성과 현대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과 故 정주영 회장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루틴은 단지 일찍 일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하루의 주도권을 자기 손에 쥐고 외부의 방해 없이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조정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메타인지 기반의 태도는 조직 경영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회사의 문화 가이드에서 ‘정직한 피드백과 배움에 대한 열린 태도’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이들은 상하 관계 없이 서로의 행동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실수를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공유한다. 이런 구조는 단순한 평가 시스템이 아니라 구성원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더 나아지기 위한 ‘학습 도구’로 기능한다.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조직의 진짜 강점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히 시스템만 구축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학습 주체가 돼 스스로 발전하도록 문화 자체를 설계했다. 실제 넷플릭스는 구성원이 주도적으로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성과를 분석해 더 나은 실행 방식을 찾도록 독려한다.성공한 사람들은 이처럼 학습을 외부에서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되는 자기 인식의 과정으로 본다. 실패했을 때 자기합리화에 몰두하지 않는다. 왜 이런 결정을 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점검한다. 이 점검과 수정의 반복이 곧 장기적인 성공을 만든다.성공한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갖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먼저 정하라”고 강조해 온 인물이다. 그의 ‘25-5 법칙’은 이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먼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 25가지를 종이에 쓴다. 그런 다음 가장 중요한 5가지를 표시한 뒤 나머지 20가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중요하지 않지만 시간이 나면 해야 할 목록’이라고 답한다.하지만 워런 버핏은 “나머지 20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리스트”며 “네가 정말 중요한 5가지에 집중하는 걸 방해할 가장 위험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단순하다. 해야 할 일을 줄임으로써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간소화하고 이를 통해 의사결정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것’을 해야 성공할 것이라 믿지만 진짜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과감히 지울 수 있는 용기가 성공을 만든다. 복잡한 시대일수록 단순한 기준이 가장 강력한 전략이 된다.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쿠팡이 국내 유통업계 1위로 성장하기까지 수년간 적자를 감내하며 물류 인프라에 투자한 전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언론은 ‘계속된 적자’를 이유로 쿠팡을 비판했지만 지금은 그 과감한 투자가 성공을 만든 결정적 요인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장기적 관점을 가질 수 있을 때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전략적 판단을 이어갈 수 있다.성공 DNA, 조직 관리에도 접목할 수 있다조직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개인의 성과에 기대는 수준을 넘어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성공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실행력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강력한 조직은 뚜렷한 기준과 문화 위에 세워진다.미션과 비전, 즉 희망을 주는 것은 구성원들의 동기부여 측면에서 중요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갤럽이 발간한 2025 글로벌 리더십 리포트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해당 조사는 전 세계 52개국, 3만1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자의 56%는 리더에게 가장 원하는 것으로 희망을 꼽았다. 이는 2위인 신뢰(33%)보다 23%포인트(p) 더 높은 것이다. ‘무기가 되는 시스템’의 저자 도널드 밀러는 “비전은 한번 정한 뒤 벽에 붙여두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구성원들에게 매일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상기시키는 것이다. 비전이 조직의 방향성과 일상의 실행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도널드 밀러는 말한다.예컨대 ‘우리는 세상의 플라스틱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환경 기업의 비전이 있다고 하자. 이 비전이 구성원 회의 때마다 언급되고 마케팅·제품 개발·고객 응대에 반영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표어가 아니라 행동 기준이 된다.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일에 대한 몰입은 차원이 달라진다.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거나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리더의 가장 큰 역할일 것이다.강력한 실행력은 단발적인 열정이 아닌 반복 가능한 시스템 안에서 자란다. 조직이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관된 루틴이 필요하다. 이런 원칙을 가장 극단적으로 실천하는 회사 중 하나가 바로 아마존이다.아마존은 프레젠테이션(PPT)보다 문서를 중요시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2004년부터 모든 회의에서 PPT 사용을 금지하고, 6페이지 분량의 내러티브 문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문서를 공유하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회의는 언제나 20~30분간의 ‘침묵 독서 시간’으로 시작된다.참석자 전원이 조용히 문서를 읽은 뒤에야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된다. 이 짧은 루틴 하나가 아마존 조직문화를 바꿨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직급이나 직책에 상관없이 아이디어가 논리적으로 평가받는 환경을 조성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회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빠르고 정교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했다.루틴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의도를 담은 반복이다. 아마존의 사례는 매일 반복되는 작은 습관 하나가 조직의 철학과 생산성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지속성과 방향성이다.지속적인 성장은 구성원의 역량 개발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수준을 넘어 조직이 학습을 일하는 과정 속에서 통합해야 진정한 의미의 ‘학습조직’이 된다. 한 기업은 월 1회씩 ‘자기계발’의 날을 갖는다. 회사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에게 자신을 가꿀 수 있고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은 직원들로 하여금 ‘배움’과 ‘성장’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이런 활동은 나아가 장기적으로 개인의 자신감, 자존감을 높여준다. 직장 생활의 만족도, 업무의 효율성까지 높일 수 있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지시받는 직원’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는 주체’가 된다. 조직은 성과를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성장을 돕는 생태계가 된다.혁신은 실패와 함께 온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은 실험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조직이다. 반대로 실패를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에서는 다양한 시도와 창의적인 해결책이 솟아난다.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네이버는 이와 같은 실험 중심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네이버는 신사업 아이디어가 생기면 소규모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빠르게 실험해 보는 방식을 택한다. 예산과 리스크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결과가 미미하더라도 성과 중심 평가보다는 실패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축적하는 데 집중한다.이런 초기 실험을 통해 네이버페이·스마트스토어·웨일 브라우저 등이 반복적인 개선 과정을 거치며 시장에 안착한 사례들이다. 실험은 기록으로 남고 조직 전반의 학습 자산이 돼 다음 시도의 연료가 된다.심리학자 에이미 에드먼슨은 이런 문화를 ‘심리적 안전감’이라 부른다. 이는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실수나 실패를 드러냈을 때도 처벌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뜻한다. 조직이 실패를 자연스러운 학습의 일부로 인식할 때, 구성원은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문화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한 민첩한 대응과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성공한 사람은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일상을 설계했고 실패를 성장의 연료로 삼았다. 오늘날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수록 성공한 사람들의 전략은 더욱 큰 가치를 발한다.개인의 루틴부터 조직의 비전 및 실행 시스템 그리고 실패에 대한 태도까지 이 모든 요소가 맞물릴 때 진짜 성과가 만들어진다.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단순히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기업 경영에 맞게 적용하면 지속 가능한 성장과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30대 초반까지 육군 대위로 복무한 뒤 전역해 자기 계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책 요약과 실행 중심의 콘텐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1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확보했으며, 컨설팅 기업인 리치해빗을 설립해 다양한 기업에서 브랜딩 강의 및 콘텐츠 기획 컨설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축약한 ‘부자들의 서재’라는 책을 출간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5.09.13 13:00

8분 소요
충격적인 美 한국인 구금과 금 간 신뢰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국민 안전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 관계부처는 모든 분이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상황을 계속해서 세심하게 관리해 주길 바란다.” 이 내용만 보면 ‘우리 국민이 위험한 분쟁 지역에 억류돼 있나’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요, 놀랍게도 동맹국이자 선진국인 미국을 위해 일하러 갔던 우리 국민들이 구금된 사태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인 대규모 단속은 충격적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로 우리 기업이 미 현지에 공장을 짓기 위해 보낸 3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체포됐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단속 당국은 군용 차량에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건설 현장을 급습하고 노동자들의 양손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는 등 마치 흉악범처럼 취급하며 끌고 갔습니다.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미국 국토안보부의 크리스티 놈 장관은 “대부분 출국 명령을 무시해서 구금됐고, 몇몇은 범죄 활동과 관련됐다”며 미국 법을 어긴 불법체류자를 단속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할 일을 했다”고 두둔했습니다.우리 기업들은 출국 명령을 받은 적이 없고 일부 비즈니스 활동이 가능한 단기 상용비자(B-1)를 취득한 출장자도 체포됐다며 이번 단속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는데요,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믿고 미국에 투자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민 단속 당국은 이번과 같은 대규모 단속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미국이 한국을 위해 특별취업비자를 내줄지도 의문이어서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자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미국과 협의에 나섰습니다. 현행 B1 비자와 관련해 해석이 다른 업무 가능 범위를 명확히 하고 단기 숙련공의 활동까지 보장하도록 확대하고, 오랫동안 추진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한국인 전문 인력 대상의 별도 비자 쿼터(E-4 비자) 신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미국이 호응해 비자 문제가 빠르게 해결된다면 기업들의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미국 노동자들의 불만도 이번 구금 사태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어서입니다. 한국 기업이 미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공장을 짓거나 운영할 때 미 노동자를 거의 고용하지 않고 저임금의 불법체류자를 쓴다며 당국에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단속과 관련해 “일부 미국인 노동자들은 미국 납세자들이 76억달러나 보조하는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을 공정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불평해 왔다”며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을 전했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은 반도체나 배터리 공장에서 필요한 자국 내 숙련공이 부족하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비자 문제 해결을 낙관할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다행히 구금된 한국인들이 풀려나며 급한 불은 껐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인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깬 신뢰를 회복하는 겁니다. 그 시발은 멈춰 선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의 정상화가 돼야 할 것입니다.

2025.09.13 06:00

2분 소요
넷플릭스 '애마'로 본 韓 에로영화와 사전검열의 시대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최근 화제인 넷플릭스의 <애마>는 한국의 본격적인 에로영화 시대를 열어젖힌 정인엽 감독의 1982년 작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그린 대안 역사물 드라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정희란(이하늬 역)은 신성영화사에 전속계약으로 묶여있는 처지다. 마지막 작품 하나만 만들면 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영화사는 또다시 희란을 야한 영화에 출연시키려 한다. 희란은 강하게 반발하고, 영화사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조연으로 강등한다. 주연에는 자신들이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신인배우를 뽑는다. 시작부터 감정적으로 얽힌 두 배우는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없다.대립하는 것은 배우뿐만이 아니다. 은근한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감독과 달리, 영화사 대표는 대놓고 배우를 벗기고 젖가슴을 노출하는 장면을 넣는 데 혈안이 돼있다. 둘은 언성을 높이고 싸운다. 여기에 5공 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의 칼날까지 가세한다.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는 말을 사랑한다는 ‘愛馬’(애마)가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제목의 변경을 강제한다. 이에 영화의 제목은 삼베의 원료인 마를 사랑하는 <‘愛麻’부인>으로 변경된다.대부분 허구...검열 역사는 그대로 반영대안 역사물이라는 장르가 으레 그렇듯이 작중 캐릭터와 그들의 언행은 대부분 허구이다. 하지만 <애마>는 <애마부인>이 겪었던 검열 과정을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愛馬가 검열에 의해 愛麻로 바뀐 것을 반영했듯이 말이다. 당시 영화사는 제작 전 사전신고를 하고 제목과 시나리오 모두를 검열받아야만 했다. 문공부는 영화사의 제작신고서에 대해 “귀하가 1981. 10. 2. 제출한 <애마부인> 제작신고에 대하여는 그 대본 내용을 검토한바 영화법 시행령 제6조 제2항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통보하오니 전면 재검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회신을 보낸다. 밑도 끝도 없는 ‘전면 재검토’라는 통보를 내린 것이다. 문제점으로는 ‘내용과 무관한 제명, 작품의 전개에 있어서 외설·퇴폐성이 짙어 성도덕이나 가정 윤리를 저해할 우려가 있음’이 지적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는 영화 검열이 버젓이 존재했다. 그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필자로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떻게 이런 사전검열이 가능했던 걸까? 그리고 이 제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일까? 한국 영화가 탄생한 이래 ‘가위질’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 기간이 그렇지 않은 기간보다 훨씬 길다. 그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영화와 사전검열의 역사를 살펴보자.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영화 사전검열’의 역사한국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검열 속에서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제도적인 검열은 1922년 「흥행장 및 흥행 취체 규칙」이 시작이다. 1940년에는 조선총독부 제령 제1호로 「조선영화령」을 발표해 영화 제작·배급엔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요(要)하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선전 영화를 양산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이「활동사진의 취체령」을 공포해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에 대한 감독과 단속 권한을 미군정청 공보부로 이관해 사전검열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국 영화는 자유를 찾지 못했다. 한국전쟁의 발발도 한몫했다. 1960년 4·19 혁명의 바람을 타고 영화 사전검열에 대한 폐지 논의가 이뤄졌지만 곧이어 일어난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흐지부지되고 만다. 군사 정권 초반부인 1962년 한국 최초의 영화 기본법인 「영화법」이 제정됐다. 이후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검열’과 ‘촬영을 마친 작품에 대한 삭제 및 상영금지’의 이중 제한 속에서도 한국 영화는 꾸준히 발전한다. 1984년에는 ‘검열’이라는 단어를 ‘심의’로 바꿨다. 이로써 형식적으로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은 사라졌지만,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심의’와 ‘검열’의 의미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기 때문이다.1987년에 이르러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심의 제도가 먼저 폐지된다. 시나리오 검열이 사라져 다소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필름’에 대한 검열은 남아있었다. 완성된 작품을 온전한 형태로 상영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보장돼 있지 못한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전검열 폐지에 대한 열망은 밀물처럼 몰려들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기에 이른다.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역사적인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영화는 상영 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며,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영화법」 제12조 제1, 2항과 그 심의 기준을 정한 제13조가 심판 대상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심판 대상 규정은 명백히 헌법 제21조 제1항이 금지한 사전검열제도에 해당하며, 공연윤리위원회는 검열기관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이 결정에서 재판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사전검열의 금지 원칙의 의미를 선언했는데, 이는 이후 다른 모든 종류의 심의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된다. 영화의 검열에 대한 판단이 종국적으로 모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 것이다. 다만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모든 형태의 사전적인 규제를 위헌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유통단계에서 영상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사전에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논리에서 탄생한 게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제도’이다. 초창기의 등급분류에는 ‘상영등급 분류보류’라는 등급이 있었다.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이유로 상영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보류’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사전검열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01년 8월 30일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의 상영등급분류보류를 위헌이라 결정했다. 비디오물 등급분류도 2009년 11월 9일 법률 개정에 따라 ‘분류보류’를 폐지하고 ‘제한관람가 비디오물’ 등급을 신설했다. 이제 더 이상 ‘보류’ 등급은 없다. 이후 몇 번의 정비를 거쳐 현재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전체관람가’, ‘12세이상관람가’, ‘15세이상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5등급제가 확립됐다. 새로운 시대와 영화 – 행정에서 자본으로다시 <애마부인>으로 돌아오자. 영화가 만들어지던 1980년대 초반은 ‘검열’이라는 단어가 아직 ‘심의’로 바뀌지도 않은 시대였다. 눈 가리고 아웅조차 하지 않았던 사전검열의 전성기였다. <애마>에서는 제작사가 고분고분 문공부의 지적에 따르고 나아가 제작사와 검열 당국 사이의 물밑 교섭까지 더해져 검열을 통과한다. 이는 픽션이다. 실제로 <애마부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나리오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는 현존하는 공문서로서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당시의 권위주의적이었던 충무로 문화와 부패한 공직사회를 반영한 추측일 뿐이지만,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애마부인>이 시나리오 검열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글래머 주연 배우의 알몸이 노출된다는 사실에 이목이 집중된다. 영화는 별다른 소란 없이 필름 검열도 통과한다. 그 이후의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에로영화의 중흥기가 열린 것이다. 영화가 우여곡절을 거쳐 행정청의 검열 또는 심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영화의 주요한 홍보 도구가 됐다. 이러저러한 역경을 이겨낸 서사가 되는 것이다.지금은 어떨까.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지금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는 등급을 부여받는다. 창작되는 순간 제한상영은 될지언정 대중을 만날 수는 있는 것이다. 행정 절차는 더는 영화의 서사가 될 수 없다. 대신 자본이 그 역할을 맡는다. 거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거액을 주고 지식재산권(IP)을 샀다는 소식, 제작비가 역대급이라는 소식, 매출이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아무래도 흥행의 칼자루는 행정에서 자본으로 옮겨간 것 같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5.09.08 06:00

6분 소요
2028 대입제도 개편, 수학이 최대 시험대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이 첫 적용되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 격차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 단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교육계 분석에 따르면 이들 학생이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전국 3271개교에서 치러진 2024학년도 1·2학기 학교 시험에서 수학 90점 이상을 기록해 A등급을 받은 비율은 전국 평균 28.5%였다. 즉, 중학교 당시 학생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수학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거뒀다는 의미다. 혼란 겪는 상위권올해 고교 입학 직후인 3월에 시행된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는 사정이 크게 달랐다. 시험 범위가 중학교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90점 이상을 받은 학생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중학교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던 학생들이 불과 몇 달 사이 성적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셈이다.세부 구간을 보면 격차는 더 뚜렷하다. 중학교 3학년 때 80점대 B등급 비율은 16.9%였으나, 고1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는 3.5%로 떨어졌다. 80점 이상 비율이 누적으로 45.4%였던 것이 불과 몇 달 후 4.7%로 줄어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절반 가까이가 80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고교 진학 후 같은 범위의 시험에서 극히 일부만 해당 점수를 받은 상황이다.더 나아가 중학교에서 90점 이상을 받은 학생 비율이 28.5%였던 것에 비해,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60점 이상을 기록한 학생 비율은 23.5%에 그쳤다. 즉, 중학교 시절 90점 이상 상위권에 속했던 학생 중 상당수가 고등학교 진학 후 60점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상위권 학생 일부가 수학 포기자로 전락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지역별 격차도 크다.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의 중학교 수학 A등급 비율은 최고 37.2%, 최저 22.0%로 15.2%포인트 차이가 났다. 2025학년도 수능 기준으로는 고3 학생의 수학 2등급 이내 비율이 지역별로 최고 13.5%, 최저 3.3%로 나타나 10.2%포인트의 차이가 벌어졌다. 중·고교 모두에서 지역 간 수학 성취도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올해 고1 학생들이 치른 3월과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의 원점수 평균을 보면 수학은 각각 44.6점, 41.9점으로 두 차례 모두 40점대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국어는 52.7점, 48.7점, 영어는 55.8점, 61.0점으로 나타나, 수학의 성적이 다른 주요 과목에 비해 두드러지게 낮았다.현재 고1 학생들은 2028학년도 대입 개편의 첫 대상 학년이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큰 변화는 수능 수학 과목이다. 지금까지 유지돼온 문·이과 구분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출제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기존에는 ‘가형(이과)’과 ‘나형(문과)’으로 구분돼 있었고, 2022학년도부터는 문·이과 통합 선택형으로 바뀌어 문과는 확률과 통계, 이과는 미적분·기하를 주로 선택했다. 그러나 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수학이 단일 유형으로 출제된다. 문과와 이과 학생이 동일한 시험지를 풀고 같은 상대평가 체계 안에서 순위를 매기게 되는 것이다. 사라진 문·이과 구분시험 범위에서도 변화가 크다. 문·이과 구분이 사라지면서 심화 과정이었던 미적분Ⅱ, 기하 단원이 제외된다. 결과적으로 수학 시험 범위는 문과 범위에 가깝게 좁혀지며, 수학이 하나의 시험지로 통합되는 것이 핵심이다.정부는 현재 AI 및 첨단학과 집중 육성 정책을 추진 중이다. 수학 과목은 이러한 정책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으며, 향후 개편된 수능 체제에서도 필요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수험생 입장에서는 문·이과 구분이 없어지고 선택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시험 범위 축소가 곧 부담 완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상대평가 체제에서 수학 시험이 지나치게 쉬워진다면 이과 학생들에게는 만점자가 속출하는 ‘물수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변별력 논란이 불가피하고, 결국 좁아진 시험범위에서 문제 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대학 입시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수능 범위에서 제외된 심화 수학 과목의 이수 여부를 대학이 반영할 수도 있지만, 이미 내신 경쟁에서 밀린 학생들은 동기부여가 약화될 수 있다. 이는 주요 대학 진학을 노리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결과적으로 AI·첨단학과 등 미래 핵심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과 수학교육의 방향성이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험범위 축소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여전히 어렵게 출제될 수 있으며, 이는 학생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입시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AI와 첨단학과 육성정책이 국가적 과제로 추진되는 상황에서, 수학 교육의 변화를 대학과 산업계, 교육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2025.09.07 13:00

4분 소요
“하이엔드 vs 가성비”…카페 창업자 위한 에스프레소 머신 선택법 [심재범의 커피이야기]

전문가 칼럼

작년 한 해 동안 5444개의 카페가 새로 문을 열었고, 1만2242개 매장이 문을 닫았다. 하루 평균 34곳의 카페가 폐업한 셈이다. 한국 카페의 평균 수명은 2.9년에 불과하다. 창업 수의 두 배가 넘는 매장이 매년 사라지고, 상당수는 3년을 채 버티지 못한다.한동안 카페 창업은 직장인의 로망으로 여겨졌다. 현실에서는 치열한 생존 경쟁과 고단한 노동, 불안정한 수익 구조가 기다린다. 카페 창업 시 프랜차이즈 방식이 가장 쉽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높은 가맹비와 유지비 탓에 독립 매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카페 창업을 준비하는 초보 사업자가 흔히 하는 고민 중 하나는 ‘어떤 에스프레소 머신을 쓸 것인지’다. 스타벅스가 이끈 ‘라마르조코’의 성장1930년대 지오바니 가찌아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하고, 1980년대 스타벅스가 에스프레소 기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시대를 연 뒤 황금빛 크레마를 만드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커피 산업의 중요한 축이 됐다. 가찌아 이후 다양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시장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한 ‘라마르조코’(La Marzocco)가 자타공인 하이엔드 머신의 대명사가 됐다.라마르조코의 특징은 ▲정밀한 온도 제어 ▲유량 제어 ▲안정적인 추출 압력과 같은 섬세한 기술과 ▲리네아 ▲GB5 ▲스트라다 등 다양한 모델의 아름다운 디자인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성능과 디자인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라마르조코는 1980년대 이후 빠르게 성장한 스타벅스와 궤를 같이했다. 프랜차이즈 커피 산업을 발전시킨 스타벅스는 확장 과정에서 라마르조코의 대표 모델 ‘리네아 클래식’(Linea Classic)을 대량 도입했고, 수천 개 매장에 공급되면서 라마르조코가 고급화와 기능성의 상징적인 머신이 됐다. 스타벅스가 자동 머신으로 전환한 뒤 스페셜티 커피 산업의 확장 과정에서도 라마르조코는 브랜딩의 상징으로 남았다.라마르조코의 급격한 성장 이후 독립 보일러 시스템과 정밀 온도 보정으로 추출 변수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시네소’(Synesso), 저유량 프리인퓨전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바리스타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하는 ‘슬레이어’(Slayer)가 더해지면서 하이엔드 에스프레소 머신은 스페셜티 커피 산업 전반으로 확장됐다. 라마르조코를 포함한 하이엔드 머신의 가격은 2000만원 이상으로 초기 창업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지만, 중고 시장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라마르조코를 포함한 하이엔드 머신 외에도 ▲시모넬리 ▲란실리오 ▲페이마 등 메인스트림 브랜드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상업용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자리 잡아 왔다. 한국 시장에서는 최근 들어 ‘씨메’(CIME)가 가성비의 대표 주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롬바르디아에서 출발한 씨메는 멀티보일러와 고출력 모터를 강점으로 내세우며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품질을 제공한다. 최저 가격은 6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내구성과 소모품 관리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하이엔드 머신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공급되면서 초보 창업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가성비의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반자동 머신 가운데 독특한 추출 헤드를 통해 탄탄한 질감의 에스프레소를 구현하는 ‘페이마’(Faema), 바리스타 챔피언으로 커피 템플 김사홍 바리스타와 오랫동안 협업한 ‘달라코르테’(Dalla Corte) 역시 메인스트림 브랜드 중에서 품질 대비 합리적인 선택지로 평가받는다. ‘가성비’로 주목받는 국산·전자동 머신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이 주도하는 한국 커피 산업에서 최근 들어 한국형 머신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가 방정호가 설립한 ‘비다스 테크’(Vidas Tech)다. 비다스는 언더바 머신부터 최신 3그룹 하이엔드 모델까지 라인업을 갖췄으며, ▲유량 변화 제어 ▲자동 세정 ▲안정적인 보일러 ▲직관적인 조작계 등 다양한 기능으로 스페셜티 업계 전문가에게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스페셜티커피협회(SCAJ) 컨벤션에 한국을 대표해 초청되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비다스 머신 가격은 1000만원 초반대부터 형성됐다. ‘엘로치오’(Eleochio)는 준상업용 머신에서 출발했으나 최근 소형 카페에서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가격대는 600만원부터 시작하고, 1인 카페나 디저트 매장에 적합하다. 단순한 구조와 합리적인 가격 덕분에 국산 머신의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 엘로치오가 국산 머신의 보급형이라면, 비다스는 프리미엄 영역에서 한국형 머신의 위상을 끌어 올리고 있다. 스타벅스가 전자동 머신을 도입한 후 할리스, 엔제리너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가 뒤를 따르고 있다. 전자동 머신은 고품질 추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쉽지만, 숙련되지 않은 파트타이머가 많은 매장에서 일정한 품질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스타벅스가 사용하는 ‘마스트레나’(Mastrena), 독일 주방 가전업체의 ‘WMF’, 스위스의 전자동 머신 ‘유라’(Jura)등이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자동 머신이다. 상업용 전자동 머신의 가격은 평균적으로 2000만원 이상이다.국산 머신의 품질이 빠르게 향상되는 가운데 메인스트림 브랜드의 가성비 모델은 창업자의 가격 부담을 완화하는 대안이 되고 있다. 전자동 머신까지 시장에 안착하면서 비싼 머신이 최선이라는 공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매장의 지향점과 정체성 기반해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맞춰 브랜딩 전략에 기초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선택하기를 추천한다.

2025.09.07 11:00

4분 소요
다단계 하청의 이중 착취, 죽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산업 일반

산업현장의 죽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2024년 589명으로 집계됐고, 동기간 사망사고 건수 역시 감소하고 있다.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란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의미한다.산재 사망 줄었지만…소규모·하청 현장은 여전히 사각지대 해당 수치만 보면 산업재해가 감소하고 있다고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3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사망자 수는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24년만 해도 사망자 589명 중 339명이 소규모 하청 및 재하청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중 152명은 5인 미만 초소형 사업장에서의 사고였다. 올해 상반기 산재 사망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소폭 감소했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크게 늘었다. 하청 노동자들이 ‘떨어짐·깔림·부딪힘’ 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했다. 이 배경에는 뿌리 깊은 다단계 하청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많은 현장, 특히 건설·조선·제조업의 경우 원청에서 1·2·3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를 양산해 반복적으로 대형 참사가 터지고 있다. 이는 ‘사고’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 고위험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원청의 관리와 책임은 소홀해진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가장 위험한 작업에 집중 투입됨에도 원청이 지급한 대금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내려오면서 쪼개져 근로자가 손에 쥐는 임금은 원청이 지급한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현상은 파견뿐 아니라 사내하청·도급·용역 등 간접고용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다. 거기에 하청업체는 인건비와 납기 압박에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한다. 실제 사례를 보자. 올해 6월, 7년 전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8년 베테랑 기술자가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비정규직이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기에 같은 발전소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회사 명의가 매년 바뀌는 ‘쪼개기 계약’이 일상화됐다. 재하청 업체 노동자였던 그는 밤 10시 이후, 심지어 자정 넘어서까지 작업 지시를 받았다. 당진 대한전선 공장에서는 하청업체 소속 40대 노동자가 떨어진 작업대에 깔려 숨졌다. 그의 업무는 납기마다 달라졌다.7월에는 구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베트남 출신 20대 노동자가 폭염에 체온 40도가 넘는 상태로 숨졌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조기 출근하여 1시에 퇴근했지만 외국인 일용직 하청 노동자였던 사망자는 폭염 속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세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해 고용부의 특별 감독을 받았던 포스코이앤씨에서는 7월에도 사망사고가 이어졌고, 대부분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제도 부족·현장 근로자 안이한 시각 문제법제도 역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는 도급인(원청) 사업장에서 관계수급인(하청업체 등)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 원청은 물론 하청업체 근로자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원청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함을 규정하고 있다. 동법에 따라 ‘도급인이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조치·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는 근로자 파견의 징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과 고용노동부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불법파견’ 판정 논란 등으로 원청의 감독이 소극적으로 이뤄진다. 임금 착취 구조와 관련해서는 지난 2019년 건설 공공부문에 공공발주자가 임금 및 하도급 대금 등을 직접 지급하는 ‘임금 직접 지급제’가 도입됐으나 전반적인 산업현장에서의 전면 도입은 요원하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이 2024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지만 하청업체들의 안전비용 투자나 인력 충원은 언감생심이다. 제도 이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다.물론 현장 근로자들의 안이한 시각에도 일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현장에 방문해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 중의 하나인 지게차 작업 시 안전모 착용을 권하면, 현장 근로자들은 “개활지에서는 법적 의무가 아니잖아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지침상으로는 그렇죠. 근데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너 돌다가 넘어져서 지게차에서 튕겨 나가 떨어지면요? 매년 지게차 사고로 1000명 이상이 다치거나 죽고 있는데 선생님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라고 다소 강하게 말하면 그렇게나 사고가 많이 일어나냐며 놀라곤 한다. 공장 출입구에 긴 파이프 더미가 적재돼 있어 지적하면, 현장 근로자에게선 “잠깐 놓은 것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화재 등 비상시 탈출에 방해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안이한 인식도 결국은 잘 정비된 제도와 강화된 관리·감독 및 교육훈련을 통해 바꿔 나가야 할 부분이다.결국 다단계 하청의 이중 착취 구조가 지속되고 원청의 관리·감독이 소홀하며, 정부가 법제도를 정비하고 적극 대처하지 않는 한 산업현장의 죽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면 원청의 책임 강화, 하청 단계 제한과 적정 이윤 보장, 실질적 안전비용 지원, 원청이 적극적으로 사업장 내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해소하는 방향으로의 법제도 정비와 강력한 시행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또다른 노동자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2025.09.07 10:00

4분 소요
‘항생제 오남용’ 막을 수 있게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 [스페셜리스트뷰]

전문가 칼럼

일상생활에서 항생제 내성의 가장 큰 원인은 오남용이다. 의료진의 처방대로 복용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항생제를 복용하는 것을 대표적인 오남용의 예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항생제 오남용은 세균의 내성을 키워 준다. 결국 약효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 결과 질병이 더 쉽게 퍼지게 되는 악영향을 가져온다. 특히 항생제 오남용은 병원균을 ‘슈퍼박테리아’로 진화시켜 국민 건강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2050년이 되면 3초마다 1명이 슈퍼박테리아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영국에서 발표한 항생제 내성(AMR·Antimicrobial Resistance)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50년에는 기존 항생제로 치료할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 때문에 전 세계에서 10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항생제 내성 환자를 위협한다글로벌 항생제 내성 연구(Gram) 프로젝트팀은 시간에 따른 항생제 내성 감염(AMR) 추세를 전 세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를 2024년 9월 16일 국제학술지 ‘랜싯’에 공개했다. 조사 결과 전 세계적으로 1990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100만명 이상이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2050년에는 사망자 수가 약 200만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연구팀의 조사 분석 결과에 의하면 현재부터 2050년까지 추산된 AMR 기인 사망자는 39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같은 항생제 내성에 관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2025년 7월 29일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해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ASP) 시범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이날 질병관리청은 고령화와 감염병 유행 등으로2021년 이후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지난 2022년 25.7 DID(Defined Daily Dose per 1000 inhabitants per day·인구 1000명당 하루 의약품 소비량)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네 번째이며, 평균치의 1.36 배”라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은 ASP 사업에 참여 중인 상급종합병원 78개소 중 15개소를 선정해 점검하고, 매년 점검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면 혈류와 복강 내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OECD에 따르면 감염의 70%는 의료 환경에서 발생한다. 항생제 내성은 수술, 이식 등의 집중 치료를 하는 도중에 암 환자들의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노인의 감염 위험성이 심각한 것으로 분석됐다. 고령층은 면역 기능이 약해 각종 감염병에 쉽게 노출돼 있어서 높은 사망률과 항생제 의존도를 보일 수 있다. 이런 항생제 내성 문제는 고령화에 따라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항생제 내성균은 ▲사람 간 직접 접촉 ▲의료기관 ▲음식 ▲글로벌 이동 등을 통해 추가로 확산돼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항생제 내성 관련 문제는 의료 비용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국가와 국민적 차원에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환자가 감염된 세균이 1차 항생제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 2차, 3차 항생제 등 더 비싼 대안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료 기간이 길어져 더 오래 입원하게 되면 더 많은 치료비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에 대응하는데 상당한 의료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OECD 국가들만 따로 보면, AMR로 인한 연간 전체 의료비는 연간 약 289억 달러(약 40조원), 여기에 경제적 효과비용을 합하면 총 660억달러(91조원) 규모이다.의사가 처방한 의약품만…용법만큼 끝까지 사용해야질병관리청은 항생제 내성을 예방하기 위해 다음 3가지를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다. 첫째, 의사가 처방한 항생제만 복용하며 의사에게 별도로 항생제 처방을 요청하지 말 것. 둘째, 처방받은 항생제는 끝까지 복용하며, 항생제를 임의로 복용 중단하거나 복용을 중단한 항생제를 재복용하지 말 것. 셋째, 손 씻기와 예방접종 등을 통해 감염질환 발생을 예방할 것. 여기에 더해 항생제 사용의 필요성을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현장 진단 시스템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현장진단(Point-of Care Testing·POCT)은 응급현장 또는 질병 진단을 위한 시설이 열악한 환경에서 신속하게 질병에 대한 결과를 얻기 위한 기술이다. 현장진단 기기는 기존의 병원에서 질병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대형 고가 장비 대신에 작고 가볍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런 장비를 일회용으로 만들어 간편한 진단이 가능하게 설계한 것이 POCT 플랫폼이다. 현재 POCT 진단 개발사들은 빠른 검사 결과가 요구되는 검사 종목에 대해 누구나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전염병 확산에 취약한 지역과 국가에서 전염병 관리에 효과적일 것으로 보이며, 고령화 사회에서 저비용으로 환자가 직접 만성 질환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의료비용 절감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신속성과 정밀성을 동시에 갖춘 진단 기술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패혈증 및 심장질환관련 응급 의료 ▲고위험군 감염병 대응 ▲중증 환자 치료에서 기존의 현장 진단과 고정밀 진단(Precision Diagnostics)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현장진단은 별도의 검사실이 아닌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검사를 시행해 진단하는 것을 말한다. 장소와 환경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짧은 시간에 결과를 알 수 있고 육안으로 현장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해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POCT는 민감도와 정확도가 낮고 여러 질환 검출을 위해서는 각각 검사를 해야 한다는 한계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코로나19) 항원 신속 자가 진단 키트 ▲임신 테스트기 ▲타액 및 소변 스틱 진단 등이 현장진단에 쓰이는 검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도의 한계를 개선하고자 형광소자를 이용해 전용 진단 리더기로 현장에서 pg/mL 단위까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대표적으로 국내의 면역진단 전문기업으로는 바디텍메드·SD바이오센서·옵티바이오·나노엔텍 등이 있다. 위 기업들은 혈액 한 방울만 있으면 소형 리더기를 통해 12분 내 감염병·암·호르몬·당뇨·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환들을 진단한다.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면역진단 외에도 ▲유전자증폭검사(RT-PCR) ▲전산화단층촬영(CT) 스캔 ▲유전자 정밀 검사 등의 고정밀 진단법은 높은 정확도를 제공하지만, 고가의 대형 장비와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며 분석 시간이 길어 응급 상황이나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적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감염성 현장진단 품목 중 하나인 MxA(Myxovirus resistance protein A)는 바이러스에 대한 세포 저항을 매개로 대부분의 급성 바이러스에 상승하는 세포내 혈액 단백질이다. CRP(C-reactive protein)는 전반적인 감염에 상승하나 박테리아 감염에 더 높게 상승한다. MxA와 CRP 수치를 함께 측정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감염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국내 면역진단 플랫폼의 전문기업인 바디텍메드·옵티바이오·나노엔텍 사들은 ‘MxA/CRP’는 바이러스 감염 지표인 MxA 단백질과 세균 감염 지표인 CRP를 한 번의 검사로 동시 및 단일로 측정할 수 있는 차세대 감염 감별 진단 플랫폼을 개발하기도 했다. 전혈·혈장·혈청을 이용해 12분 이내에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 기존 PCR이나 혈액배양 검사보다 시간과 비용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응급 상황에서 더 빛나는 의료 현장 진단 플랫폼 현장진단 플랫폼은 항생제 오남용 외에도 응급의료현장대응에 도움이 되는 필요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응급의료현장대응 현장진단 플랫폼은 응급 상황에서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응급의료 서비스의 질과 효율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현재 과학기술 분야에서 개발되는 다양한 기술, 예를 들면 IoT, AI, 원격의료 등을 활용해 시스템화해야 한다.이런 기술들에 대한 적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장 진단 및 환자 상태 파악이다. AI 기반 분석으로 응급 정도를 분류해 환자의 중증도를 자동 판단하고 이송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둘째, 현장과 병원 간 정보 연계가 있다. 응급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병원에 실시간으로 전송해 의료진이 환자가 도착 전에 상태를 파악하고 사전에 준비하게 할 수 있다. 셋째, 의사결정 지원이다. AI 기반 알고리즘이 진단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대응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심정지 환자에게는 즉시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을 권고하고 외상 환자에게는 트라우마 센터 이송을 제안하는 식이다. 넷째, 데이터 축적 및 사후 분석도 있다. 응급 대응 과정과 결과 데이터를 축적해 추후 분석 및 정책 수립에 활용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패턴을 파악하면 향후 응급의료 품질 개선 기초 자료들로 활용할 수 있다. 응급의료체계에서는 ‘골든 타임’이 특히 중요하다. 짧은 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대응할 수 있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특히, 패혈증이나 심장질환 등 중증 상황에서 신속한 현장진단 시스템은 보다 빠른 처치와 환자 분류 결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까지 응급의료 체계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응급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POCT 진단플랫폼 적용은 아직도 미흡한 상태이다. 결론적으로, 항생제는‘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잘못된 사용은 나와 가족,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올바른 사용 습관과 교육, 그리고 정책적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차원의 대대적 지원과 의료정책 보완 및 개선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현장진단 플랫폼 산업화 및 응급의료 진단 대응 체계가 잘 갖춰진다면, 사회 전체가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응급의료실 ▲각 지방자치의 의료기관 ▲여러 산간벽지 등에서 환자들의 응급상황 의료 부담이 줄어들고, 전체적인 의료자원 활용도 높아질 수 있다. 기존에 문제가 됐던 항생제 오남용을 막고 응급상황 시스템을 개선하면 궁극적으로 민생안전과 국민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옵티바이오 연구소장이자 생명과학 이학박사로 진단분야 전문가다.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한국파스퇴르연구소, Sk 생명과학연구소, (주)바디텍메드, (주)피씨엘 등에서 기초과학 및 면역진단 제품 개발과 핵심 연구를 주도했다.

2025.09.07 09:00

7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