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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검정고시’ 수험생...고1에 큰 압박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검정고시 출신 수험생의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2025학년도 수능에 검정고시생 2만109명이 지원해 30년 만에 처음으로 2만명을 넘겼다. 현행 수능이 도입된 1994학년도 이후 검정고시 수능 접수 인원으로는 1995학년도(4만2297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1995학년도에는 수능 점수로 학교 내신을 보정하던 ‘비교내신제’가 갑작스럽게 폐지되면서 외국어고 등 특목고 재학생들의 집단 자퇴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이들이 대거 검정고시를 택하며 일시적으로 숫자가 급증했던 특수 상황이었다.최근 5년간 검정고시 수능 접수자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21학년도 1만3691명, 2022학년도 1만4277명, 2023학년도 1만5488명, 2024학년도 1만8200명, 2025학년도에는 2만109명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2026학년도에는 3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올해 4월 치러진 고졸 검정고시 지원 인원은 1만1272명으로 최근 4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3년 일반고 중도 탈락 학생은 1만8498명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많았다. 이 같은 흐름에 비춰볼 때, 2026학년도 수능에서 검정고시 출신 수험생 규모는 전년보다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존재감 커지는 검정고시 상위권 대학 진학에서도 검정고시 출신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2025학년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연고) 합격자 중 검정고시 출신은 259명으로, 전년(189명) 대비 37.0% 증가했다. 이는 2018학년도(80명)와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서연고 합격자 수는 2021학년도 138명, 2022학년도 142명, 2023학년도 155명, 2024학년도 18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검정고시생 중 상위권 수험생의 증가세를 뒷받침한다.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이화여대·한국외대 등 주요 10개 대학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2025학년도 검정고시 출신 입학생은 785명으로, 종로학원이 2018학년도부터 집계한 이후 8년 연속 증가세다. 2018학년도에는 276명이었다.이 같은 변화는 향후 대학입시 제도 개편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2028학년도부터는 내신 체계가 현행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뀐다. 이 경우 상위 10% 이내에 들지 못할 경우 내신이 2등급(1144%), 3등급(4566%) 등으로 밀려날 수 있어 변별력은 낮아지고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2026학년도 기준으로 전국 의대 선발 인원은 3092명, 여기에 한의대, 치대, 약대를 포함하면 총 6498명이다. 여기에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SKY대학까지 합산하면 1만8601명, 인서울 4년제 대학 전체를 포함하면 약 8만4632명 규모다. 수험생 전체 인원이 50만 명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신 상위 10%에 들지 못하면 사실상 인서울 대학 진입조차 쉽지 않은 구조다.실제 내신 5등급제 하에서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아야 하는 학생 수가 6000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과목 1등급을 받는다 해도 내신 성적만으로 의대 입학은 불투명한 상황이다.2028학년도부터는 고교 학점제도 전면 시행된다. 고교 학점제는 학생이 적성과 진로에 따라 진로선택과목, 융합선택과목 등을 선택해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고, 이 이수 내용이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상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내신에서 상위 10%에 들지 못할 경우, 고교 학점제를 활용한 과목 선택과 집중이 입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현 고1, 내신 상위 10%가 변수수험생 입장에서는 내신 경쟁에서 밀려날 경우, 정시 혹은 논술전형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되는 구조다. 현행 통합수능은 2026학년도, 2027학년도 단 두 번만 시행된다. 2028학년도부터는 수능 체제도 전면 개편되기 때문에, 내신 성적이 불리한 학생들은 현 제도에서 불과 2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셈이다. 이미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현 고1 학생들에게는 현재 내신 성적이 상위 10%에 들어갔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2028학년도부터 적용될 개편 입시제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시 축소 및 수시 확대 ▲절대평가 확대 ▲고교학점제 중심 전형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현재 고1 학생들 중 내신이 불리한 학생들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게다가 고1 학생들에게 적용될 2028학년도 입시 전형은 내년 4월 말이 돼야 구체적으로 발표된다. 대학들은 입시제도 변화 방향이 정해질 경우 수시·정시 비중 조정, 정시 내신 반영 확대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상위 10%에 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진학 불안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2028학년도 입시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문·이과 완전 통합이다. 이에 따라 수능에서도 문·이과 구분 없이 사탐, 과탐 모두 응시해야 하며, 수학 과목 또한 계열 구분 없이 선택하도록 변경된다. 학교 내신 또한 진로 및 융합 선택과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야 하며, 이들 과목 수는 200개가 넘는다. 학교별로 개설 과목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 학교 간 격차도 발생할 수 있다.서울대는 2028학년도 수시·정시에서 '핵심 권장과목'을 발표했다. 인문계열은 제2외국어 및 한문 외에는 별도로 특정 과목이 없지만, 자연계열은 의대·약대 등 메디컬 계열을 포함해 수학, 과학 과목을 구체적으로 권장했다. 학과별로 필요한 과목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들도 인문계, 자연계 학과별로 서로 다른 과목을 권장하는 추세다.문·이과 통합이라는 교육 당국의 기조와 달리, 대학 입시에서는 사실상 계열 구분이 여전히 뚜렷하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사실상 특정 대학과 학과를 목표로 한 과목 선택과 학업 전략이 요구되는 셈이다. 내신 성적이 절대적인 수치로 평가되는 현재 구조에서는 수시 6장, 정시 3장 등 지원 횟수는 같더라도 성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는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25.07.27 08:00

4분 소요
해킹, 더 이상 기업만의 문제 아니다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SGI서울보증은 국내 최대이자 유일의 종합보증보험사인데요, 개인과 기업이 경제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증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개인의 경우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휴대전화 할부 개통 등에 필요한 보증보험이 대표적인데요, 사실상 공적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4일 ‘랜섬웨어’라는 사이버 공격으로 시스템이 마비돼 보증 서비스가 3일 넘게 중단되면서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랜섬웨어 공격으로 국내 보험사의 업무가 마비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랜섬웨어는 몸값을 뜻하는 ‘Ransom’과 ‘Software’의 합성어인데, 컴퓨터나 서버의 파일을 암호화한 뒤 복구를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는 사이버 공격 수법입니다. 국내외에서 이 수법에 당한 사례가 많은데요, 지난 6월 2000만명가량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대표 온라인 서점 예스24도 랜섬웨어 공격으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해 소비자들이 예매한 공연 내역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책을 주문하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었습니다. 예스24는 해커가 서버에 접근하는 길목에 걸어놓은 암호를 풀지 못해 장시간 서비스를 재개하지 못하다가 1주일 만에 대표가 공식 사과하고 복구 및 재발 방지 대책과 보상안을 발표했습니다. 해외에서는 랜섬웨어 공격으로 회사 문을 닫은 일도 있습니다. 100년간 냅킨을 만들어온 독일 기업 파사나는 지난 5월 랜섬웨어 공격을 받고 업무 시스템이 마비돼 송장 작성이나 주문 처리뿐 아니라 240명의 직원 급여도 줄 수 없는 지경에 놓였습니다. 심지어 해커는 회사의 모든 프린터로 협박 메시지를 출력하기도 했는데요, 파사나는 결국 파산을 선택했습니다. 사이버 공격 중에서도 랜섬웨어가 악명이 높은 것은 시스템을 마비시켜 놓고 돈을 요구한다는 점인데요, 특히 수사당국 등이 움직이면 아예 연락을 끊고 사라져 복구 자체가 불가능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격받은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해커에게 몸값을 주고 조용히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랜섬웨어 공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다양한 변종도 생겨나고 있는데, 해커 조직이 다른 범죄자에게 랜섬웨어를 빌려주는 서비스화도 확산하는 추세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미리 대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해킹의 세계에서는 방어보다 공격의 기술이 한발 앞서 나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해커가 작정하고 뚫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보안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보안 침해 사건의 책임을 무조건 기업에만 지우는 것이 맞느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요즘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 규모가 기업이 감당하기 힘들 뿐 아니라 당국의 제재도 엄중해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자칫 기업이 망하면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돼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징벌 위주로 다루는 사이버 보안 대응 체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2025.07.27 07:00

2분 소요
불확실성의 시대, 스타트업이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방법 [순화동필]

전문가 칼럼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가이자 베스트셀러 ‘린 스타트업’의 저자인 에릭 리스(Eric Ries)는 스타트업을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도록 설계된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처럼 스타트업은 뚜렷한 수요나 고객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며, 시장 규모조차 확정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불확실성은 창업 후 일정 시점까지 자금이 바닥나는 구간,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로 이어진다. 통계에 따르면, 이 고비를 넘겨 3년 이상 생존하는 스타트업은 10%에 불과하다.죽음의 계곡을 버텨내기 위해 외부 투자유치는 필수불가결하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전까지,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자금에 의존해 인력과 인프라를 확보하여 운영하며 시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유치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2023년 국내 스타트업 투자금은 전년 대비 약 53% 감소했고, 투자 건수는 36% 줄었다. 2024년에 투자금 규모는 소폭 회복됐지만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전체의 18.6%에 그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25년 1분기 기준 초기 투자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하며 시장의 보수적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이처럼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존재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확보한 팀이었다. 투자자는 리스크를 감수하지만, 아무 근거 없는 희망에 투자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다음의 질문에 잘 답하느냐에 달려 있다.아이디어가 아닌 실행력 증명해야 투자자는 아이디어보다 실행력에 투자한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라도 팀이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출시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실행력은 단순한 추진력 이상의 개념이다. ▲기술 구현 능력 ▲일정 준수 ▲문제 해결 역량 ▲자원 동원 능력 ▲팀워크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스타트업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말보다 “우리는 이미 이것을 해왔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최소기능제품(MVP)의 개발 여부 ▲초기 사용자 피드백 ▲PoC(개념검증) ▲파일럿 테스트 등의 실적은 실행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다.실행력은 단기적인 성과 이상의 의미도 갖는다. 투자자들은 종종 “이 팀이라면 뭘 맡겨도 결국 해낼 것 같다”는 생존력을 원한다. 환경이 바뀌고, 전략이 틀어지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도 결국엔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과를 만들어낼 것 같은 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은 숫자 이상의 신뢰를 준다.과거의 말과 현재의 결과 사이에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지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이 팀은 자신들이 한 말을 실제로 해낸다”는 증거가 쌓일수록, 투자자는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실행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물고기 있는 곳에서 낚시해야...시장성 증명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의 수요가 없다면 사업은 실패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시장성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아이디어의 신선함이나 독창성보다, 누가 왜 이 제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스타트업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 이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잘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미리 입증해야 한다. ▲잠재 고객 대상 설문조사 ▲인터뷰 ▲프로토타입 기반 유료 테스트 ▲베타버전의 사용자 반응 및 리텐션 지표 등은 이를 입증하는 유효한 수단이다. 투자자는 이런 자료를 통해, 아직 출시 전이라 하더라도 시장에서 실제 구매가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또한 전체 시장 규모(TAM)·유효 시장 규모(SAM)·확보 가능 시장 규모(SOM) 분석을 통해 시장 규모를 수치화하고 경쟁사를 분석해 시장 내 포지셔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런 자료는 단지 보고용이 아니라, “이 시장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이 지점을 노리고 있다”는 전략을 뒷받침하는 근거다.아무리 정교한 낚시 도구를 만들어도, 물속에 물고기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뛰어난 낚시꾼은 정교한 장비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물고기가 실제로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마찬가지로 시장성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 제품을 필요로 하는 고객이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실제 수요가 있는 지점을 발견해내는 능력이다.특히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한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핵심 자산이 된다. 실제 고객이 존재하고, 그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제품이 설계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시장성과 관련된 핵심 신뢰 요건이 된다.생존 넘어 ‘폭발적 성장’ 가능 여부 보여줘야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사업이다. 그렇기에 투자자들은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한다. 이 기대 수익은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제품 생산과 마케팅이 본격화되었을 때 급격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투자 이후 급격한 확장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가 투자 유인의 핵심이다.이를 위해 스타트업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구조와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증명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J커브형 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인지 여부는 가장 핵심적인 평가 기준 중 하나다. 고객 수 증가에 따라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동시에 비용은 일정 수준 이하로 효율적으로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 초기 시장을 신속하게 선점할 수 있는 역량 역시 중요하다. 이는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하고, 후속 투자 유치를 위한 중요한 설득 요소가 된다. 즉, 단순한 ‘확장 가능성’의 언급을 넘어 얼마나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지’ ‘얼마나 빠르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확장 범위의 유연성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충분한 규모의 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은 인구 구조상 내수 시장의 성장에 한계가 뚜렷해 수출 가능성이나 해외 진출을 통한 스케일업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른 지역, 국가 혹은 유사 산업군에서도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는지 여부가 투자자의 판단 핵심 기준이다. 하지만 빠른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가치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에서 나온다. ▲기술력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 ▲브랜드 ▲고객 라인 구조 ▲규제적 진입장벽 등은 후발주자가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요소다. 스타트업은 자신이 가진 경쟁력이 단기적인 ‘속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우위에 기반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 투자를 만든다지금의 투자 시장은 여러모로 ‘빙하기’에 가깝다. ▲고금리 ▲경기 침체 ▲투자 회수 환경의 악화 ▲특정 분야로의 쏠림 등으로 초기 스타트업은 더욱 어려운 경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기업은 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 속에서 신뢰를 만들고, 예측 가능성을 제시하며, 확실한 수요와 실행력을 보여주는 팀이다. 투자자는 결국 “이 팀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확신을 원한다. 그 확신은 말이 아니라 행동, 가설이 아니라 실행, 가능성이 아니라 근거로부터 생긴다.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숫자를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이렇게 해내고 있다”는 현실적인 증거를 하나씩 쌓아가는 일이다. 그 증거들이 모여 결국 투자를 만든다.

2025.07.20 10:00

5분 소요
검색의 패러다임이 바뀐다…AI가 불러온 디지털 마케팅의 새로운 규칙들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필자는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프랑스인이다. 커리어 초반에는 구글 검색 상위 노출이 디지털 마케팅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여겼다. 그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검색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로 향하는 우리의 관문이었던 ‘검색’은 이제 인공지능(AI)를 중심으로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은 독특한 온라인 검색 환경을 갖고 있지만,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해서 이 거센 변화의 흐름에서 비켜갈 수 없다. 오히려 기술 혁신과 신기술 도입에 있어 늘 앞서 온 국가이기에 새로운 검색 시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료 챗GPT 구독자 수 기준으로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 떠올랐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CLOVA for AD’를 실험했고, 올해는 AI 브리핑 서비스를 선보였다. 카카오는 Open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SK텔레콤은 자체 AI 에이전트 ‘에이닷’을 출시했다. 스타트업 뤼튼은 108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라운드 투자 유치에 성공해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키워드 중심에서 문맥 기반 지능으로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0년대 초반의 검색은 키워드 중심의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이었다. 구글·야후·네이버 등 주요 검색 엔진들은 키워드를 입력하면 관련 링크를 보여주는 구조로 작동했고, 마케터들도 이에 맞춰 검색어 최적화 전략을 펼쳤습니다.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검색 환경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인스타그램·유튜브·레딧(Reddit)과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단순히 정보를 찾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추천을 참고하며 ‘소셜 검색’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그리고 현재 2020년대의 검색은 단순한 진화를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챗GPT, 퍼플렉시티(Perplexity) 같은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링크 목록이 아닌, 맥락에 맞는 직접적인 답변을 제공하는 ‘생성형 엔진’을 도입하며 기존 검색 엔진의 트래픽을 잠식하고 있다.두 번째 변화는 기존 검색 엔진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구글의 AI Overview, 네이버의 AI 브리핑처럼 AI가 요약한 정보를 상단에 배치하고 있다. 그동안 마케터들이 공들여 확보해온 광고 영역(SEM)과 자연 검색 결과(SEO)의 노출이 줄어들고 있습니다.세 번째 변화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이다. 이들은 이제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이발 예약 같은 일상 업무까지 수행하며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링크가 아닌 답변을 원하는 사용자의 등장 이제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단순한 ‘클릭’이 아니라 ‘신뢰’다. 사용자들은 더 이상 여러 페이지에 걸친 검색 결과를 인내심 있게 살펴보지 않는다. 대신, 간결하고 직접적인 답변을 기대한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성형 엔진과 AI 에이전트,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발전이 사용자의 기대를 재정의한 결과다. LLM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문맥을 이해하고, 마치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정확한 답변을 생성할 수 있는 정교한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이러한 모델 덕분에 챗GPT나 Perplexity 같은 플랫폼은 기존의 검색 결과 리스트를 생략하고, 사용자 질문에 대해 대화형으로 바로 응답할 수 있게 됐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신생아가 있는 3인 가족에게 적합한 한국의 전기차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고 가정해보자. 예전에는 다양한 광고·리뷰·제품 페이지를 일일이 클릭해가며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챗GPT나 Perplexity와 같은 플랫폼이 ▲안전성 ▲편의성 ▲충전 속도 ▲가격 등을 비교한 구조적인 답변을 사용자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전통적인 웹사이트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용자는 더 이상 링크를 클릭하지 않고, AI가 생성한 답변 자체를 신뢰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터는 반드시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LLM은 정보를 어디서 얻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정확한 출처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최근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LLM이 선호하는 정보 출처는 다음과 같다. 위키피디아·쿼라(Quora)·Reddit 등 사용자 기반의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이다. 그리고 링크드인(LinkedIn)·인스타그램·유튜브 등의 소셜 네트워크가 꼽힌다. 개인 중심의 블로그 채널인 미디엄(Medium)·브런치·네이버 블로그 등도 LLM이 선호하는 정보 출처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즈 등의 글로벌 언론사가 LLM의 정보 출처다. 이런 변화는 마케터에게 새로운 전략적 질문을 던진다. 마케터는 ▲내 브랜드는 LLM이 신뢰하는 출처에서 충분히 눈에 띄고 있는가 ▲내 브랜드는 정확하고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나는 그 표현 방식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한다. 결국, 새로운 사용자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기술 환경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이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브랜드의 가시성이 이제 LLM의 인식에 좌우되는 시대, 마케터는 기존의 검색 최적화 전략을 넘어 AI 상에서의 브랜드 존재감을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 AI가 브랜드를 인식하는 방식 이해 필수 그동안 마케터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전략을 설계했다. 이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오디언스(잠재 고객 집단)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바로 AI다. AI가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노출과 신뢰도가 결정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마케터는 세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 첫 번째 ‘모델 점유율’(Share of Model)을 측정해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서 주목한 모델 점유율은 생성형 AI가 제시하는 답변 내에서 브랜드가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언급되는지를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다. 이는 기존의 검색 점유율(Share of Search)이나 음성 점유율(Share of Voice)을 보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생성형 AI는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라는 질문에 내 브랜드를 얼마나 자주 언급하는가 ▲LLM은 내 브랜드의 강점과 약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이런 인식이 Gemini·챗GPT·메타 라마(Meta Llama) 등 서로 다른 모델 간에도 일관되는가 등의 질문이다. 두 번째는 AI가 신뢰하는 출처를 파악하는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를 위한 플랫폼 셈러시(SEMrush)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공식 브랜드 웹사이트보다 Quora·Reddit· LinkedIn 등 커뮤니티 기반의 신뢰도 높은 사이트를 더욱 빈번하게 인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LLM이 실제로 참고하는 정보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케터는 자사 카테고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도메인을 파악하고, LLM이 신뢰하는 매체에서 브랜드가 긍정적으로 언급되도록 PR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속 가능성’이나 ‘가격 경쟁력’이 브랜드의 핵심 포지셔닝 요소라면, 해당 특성과 관련된 키워드로 자주 언급되는 매체나 플랫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AI를 활용해 ‘사전 진단’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도 이제는 ‘AI 대상 테스트’가 필수다. ▲광고 ▲제품 상세 페이지 ▲영상 등 어떤 유형의 콘텐츠이든 실제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에 생성형 AI에게 해당 콘텐츠를 해석하게 하여 브랜드 메시지가 의도한 대로 전달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AI 기반 사전 진단(Pre-Flight Test)은 단순한 품질 검수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람과 알고리즘이라는 두 오디언스를 동시에 고려하는 전략적 정렬 수단이 될 수 있다. AI 인사이트 엿보기이러한 전략들이 실제로 어떤 인사이트로 이어지는지 확인해보자. 최근 모델 점유율 리서치 결과에서 도출된 사례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래 사례는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기업 젤리피쉬(Jellyfish)는 'Share of Model' 분석 기능을 활용해 한국 시장 내 패션 브랜드를 대상으로 리서치를 수행한 결과다. 샤넬(Chanel)의 언급률은 99.7%를 차지해 평균 2위라는 순위를 기록했다. 한국 내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 중에서도 AI가 가장 자주 언급하고 높은 위치에 배치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LLM에게 “한국의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Chanel은 거의 항상 추천되는 브랜드 중 2위 안에 위치한다는 의미다.반면,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Off-White)의 언급률은 43.8%로 절반 이하에 그친다. 추천 브랜드 상위 20위 안에 포함되는 경우도 드물다. 이는 AI가 브랜드를 인식하고 추천하는 방식에 있어 분명한 격차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산드로·띠어리 분석 결과...LLM의 브랜드 인식 이해할 수 있어▲우아함 ▲미니멀리즘 ▲가성비 등의 브랜드 특성에 대해 LLM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분석했다. 프랑스 브랜드 산드로(Sandro)는 우아함과 50%의 긍정적 연관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미니멀리즘과는 단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와 다르게 미국 브랜드 띠어리(Theory)는 우아함(20%)과 미니멀리즘(21%) 모두와 고르게 연결됐다. 보다 균형 잡힌 브랜드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약점’으로 인식되는 항목을 살펴보면 Sandro는 ‘비싸다’(37%)와 ‘내구성이 약하다’(19%)는 이미지가 두드러졌다. 이에 반해 Theory는 ‘비싸다’(36%)와 ‘평범하다’(12%)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사용하는 LLM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딥시크(DeepSeek)는 Sandro를 31%의 비율로 ‘내구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로 평가했지만, Meta Llama는 한 번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았다. Theory의 경우에도 Meta Llama는 30%의 비율로 ‘평범하다’고 인식한 반면, Gemini에서는 같은 평가지표가 단 8%에 불과했다.이처럼 브랜드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AI 모델마다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마케터가 단순히 하나의 LLM 반응에 의존하면 안되는 것이다. 주요 LLM들의 인식 차이를 면밀히 분석하고, 자사 브랜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다각도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이는 LLM이 주로 참조하는 정보 출처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네이버 블로그·인스타그램·무신사 등은 자주 인용되는 주요 도메인이지만 인용 빈도는 LLM마다 확연히 다르다. 무신사는 ChatGPT·Perplexity·Claude·Meta Llama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반면, DeepSeek와 Gemini에서는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이는 마케터가 자사 브랜드가 노출되기를 원하는 LLM이 신뢰하는 매체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 배치 및 홍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인사이트 이후의 전략…실행이 성과를 만든다 아무리 정교하고 흥미로운 인사이트라도,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AI와 기술은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시간을 크게 단축해주지만, 그것을 브랜드 전략과 연결하고 실질적인 성과로 전환하는 일은 여전히 마케터의 몫이다. 예를 들어,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국 시장에서 특정 브랜드가 Meta Llama에 의해 ‘너무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 상위 인용 도메인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에 어떤 콘텐츠가 노출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브랜드 고유의 스타일과 강점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메시지를 조정하거나, 적합한 인플루언서 풀을 재구성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궁극적으로 AI 시대에도 브랜드의 방향을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주체는 사람이다. 기술이 인사이트를 제공해줄 수는 있지만,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실행력이다. AI에 각인되어야 경쟁력 만들 수 있어 검색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성공의 기준은 달라졌다. 이제 단순히 검색 결과 상단에 오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브랜드가 AI의 인식 속에 자리 잡는 것, 그것이 새로운 경쟁력이다. 사람을 위한 검색 최적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AI가 어떻게 브랜드를 이해하고 기억하는지를 관리해야 할 때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디지털 마케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다.결국 마케터는 두 가지 오디언스를 함께 마주하게 됐다. 하나는 소비자, 다른 하나는 소비자의 결정을 돕는 AI다. 브랜드를 AI에 먼저 각인하지 않으면 경쟁사나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것이다. 필자인 에티엔 고테롱은(Etienne Gautheron) 프랑스·네덜란드·한국에서 활동해온 글로벌 디지털 전략가다. 프랑스의 Institut Mines-Télécom과 KAIST에서 복수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기술과 마케팅의 교차점에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네덜란드에서는 미국 SaaS 스타트업 Optimizely의 유럽 시장 확장을 지원했고, 이후 프랑스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Reeport에 합류했다. 이 스타트업은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그룹 젤리피쉬(Jellyfish)에 인수됐고, 현재 젤리피쉬의 한국 지사를 총괄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와 한국의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비영리 단체 ‘라 프렌치 테크 서울’(La French Tech Seoul)의 공동 회장으로 2년간 활동한 바 있다.

2025.07.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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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 꼴찌’ 탈출의 시간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여름철 찜통더위의 기준은 ‘폭염 한계선’으로 불리는 40도인데요, 올해는 8월도 되기 전인 7월 초에 경기 파주가 40.1도, 광명이 40.2도를 찍었습니다. 살인적인 불볕더위에 온열질환자는 작년보다 3배(1550명)나 증가했고 추정 사망자도 6명 늘었습니다. 폭염은 바다도 데우면서 양식장의 집단 폐사로 인해 인기 횟감인 우럭과 광어의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한반도 바다가 뜨거워지며 시간당 100㎜가 넘는 국지성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도 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상 기후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요, 유럽과 북미는 기록적인 폭염과 극심한 가뭄, 거센 산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이상 기후는 화석연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를 뜨겁게 달궈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태양광과 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를 제시했습니다. 영국의 다국적 비영리단체인 더 클라이밋은 일찍이 온실가스로부터 지구를 구하자며 2014년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2050년까지는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RE(Renewable Energy)100’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애플·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취지에 공감해서 적극 참여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 등 3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기업의 RE100 이행률이 지난해까지 24%밖에 안 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는 점입니다. SK하이닉스·삼성디스플레이·SK스페셜티가 재생에너지 사용률 100%를 달성했고, 삼성전자 97%, 아모레퍼시픽 97% 등이 100%에 근접하고 있지만 이는 모두 해외 사업장 얘기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공급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해 RE100을 하고 싶어도 못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2030년 재생에너지 공급 목표가 21.6%로, 영국 85%, 독일 75%, 미국 59%, 일본 38% 등에 뒤처져 OECD 37개국 중 꼴찌입니다. 이를 보면 정부가 RE100 이행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윤석열 전 대통령은 “RE100이 뭐죠?” “재생에너지 100%,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등 무관심과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져 있는데요, 이는 수출국가로서 매우 치명적입니다. 해외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최근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전기로 100% 가동되는 ‘RE100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며 관계부처 합동 TF를 꾸려 상세 계획과 특별법 제정안의 논의를 시작한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 대통령은 RE100 산단에 규제 제로 기업 환경, 매력적인 교육·정주 여건 등 강력한 인센티브 제공도 주문했습니다. 정부의 확실한 의지는 확인된 만큼 이제는 속도를 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25.07.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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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데몬헌터스’와 ‘킹 오브 킹스’의 교훈[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최근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두 편의 애니메이션이 한국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소니픽처스가 기획·제작하고 넷플릭스가 공개한 ‘K팝 데몬헌터스’가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순수 한국 기술과 제작진이 만든 ‘킹 오브 킹스’다. 이 두 작품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잠재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교훈을 던진다.K팝 데몬헌터스는 넷플릭스 시청률 전 세계 1위는 물론이고, OST마저 각종 글로벌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다. 2025년7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아이돌 그룹은 누가 뭐래도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스’다. 또한 애니메이션 자체 만으로 디즈니와 픽사가 양분하던 애니메이션 시장에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작품의 성공은 글로벌 브랜딩 관점에서 세 가지 중요한 혁신을 보여줬다.K-팝 브랜딩 혁신: 서사 기반 아이돌 브랜딩우선 K팝 데몬헌터스는 K팝 아이돌 브랜딩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복시켰다. 서사 중심의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먼저 구축하고, 그 안에서 탄생한 가상 캐릭터를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혁신적 브랜딩을 도입한 것이다. 극 중 가상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강력한 내러티브 컨텍스트 안에서 먼저 존재감을 확보했다. 팬들은 이들의 음악적 재능보다는 스토리 속에서 펼쳐지는 캐릭터의 성장과 갈등, 관계성에 먼저 몰입했고, 이후 자연스럽게 음악적 결과물까지 소비하는 패턴을 보였다.이는 기존의 '아이돌 → 음악 → 팬덤' 구조를 '서사 → 캐릭터 몰입 → 아이돌화 → 음악 → 확장된 팬덤'으로 재편한 것으로, ‘스토리텔링 기반의 IP브랜딩’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확장성 측면에서 데몬헌터스는 실제 아이돌이 겪는 나이, 군 입대, 스캔들 등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아직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외전, 시리즈화나 다른 장르의 콘텐츠로의 끊임없이 확장이 가능한, 누가 봐도 무한한 확장성을 품고 있다.특수성을 통한 보편성 획득이 작품이 보여준 두 번째 브랜딩 인사이트는 한국 문화의 특수성을 보편적 가치로 전환시킨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이다. 영화의 곳곳에는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보여 주는 깨알 같은 장치들이 등장한다. 남산타워, 잠실, 삼성역, 서울 성곽길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매력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다. 수저 아래 티슈를 까는 K-식사 매너, 멜로망스 '사랑인가 봐' BGM과 함께 슬로우모션에 빠지는 K-드라마 클리셰 등은 한국 시청자에게는 공감과 웃음을, 해외 시청자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심지어 영화에는 우리 민화 작호도(鵲虎圖)에 등장하는 더피(Derp)라는 이름의 호랑이와 수지(서씨:Sussie)라는 까치 캐릭터가 조연으로 톡톡히 역할을 한다. 이는 과거 로컬의 특수성을 글로벌 수용자의 보편성에 맞춰 순화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팬덤의 능동적 참여 유도: IP 가치의 재정의세번째로 잘 만들어진 서사와 진정성이 있다면 가상의 아티스트도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실존하지 않지만 전 세계 팬들이 실제 아이돌처럼 사랑하고 있다. 이는 IP의 가치가 더 이상 콘텐츠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팬덤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는가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제작진은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했다. 그들은 SNS를 통해 한국 문화 디테일의 창작 의도를 공유하고, 캐릭터 소품에 담긴 세계관을 설명하며 팬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까지 알려주면서 팬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팬들은 이제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세계관을 해석하고 확장하는 능동적인 창작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 것이다.'쿵푸팬더'의 경고그러나 이러한 성공 뒤에 숨은 구조적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K팝 데몬헌터스'의 성공은 할리우드가 중국 문화를 소재로 만든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떠올리게 한다. '쿵푸팬더'는 중국의 무술, 철학, 음식, 정서를 정교하게 담아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왜 우리가 먼저 만들지 못했는가?"라는 성찰의 목소리가 컸다.중국의 소재와 문화를 반영했음에도 실질적인 열매는 모두 할리우드가 가져갔고, 오히려 중국이 자국 문화를 제대로 상품화하지 못한다는 현실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멕시코 문화 소재 애니메이션 '코코'에 대해서도 같은 논쟁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한국은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2023년 기준 약 9,299억 원 규모인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일본(26조 원)이나 미국(32조 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K팝 데몬헌터스'는 우리 문화를 주제로 했지만, 소니 픽처스가 제작했고 넷플릭스가 유통시켰으며 IP 역시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이 작품에서 한국은 '문화적 배경'이자 '스타일'로서 활용됐을 뿐, 제작의 주체도, 창작의 중심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글로벌 애니메이션 생태계의 하위 생산자에 머무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는 우리의 민화 더피와 수지캐릭터 굿즈가 큰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단순히 '해외에서 우리 문화를 알아준다'는 자부심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영원히 문화의 '소재 제공자'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다.'킹 오브 킹스'가 보여준 희망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쟁력이 마냥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 4월 북미에서 개봉한 순수 한국 기술과 제작진이 만든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이 영화는 개봉 직후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며 첫 주에 약 1,905만 달러(약 272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성경 기반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 오프닝 성적을 보유했던 1998년 '이집트의 왕자'의 기록(1,452만 달러)을 뛰어넘는 성과이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제치고 북미 박스오피스 한국 영화 역대 1위 기록을 달성했다.'킹 오브 킹스'의 성공은 명확한 전략에 기반한다. 바로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이다. 처음부터 시장을 글로벌로 타겟팅하고 기획 단계부터 해외 시장의 정서를 깊이 고민하며 투자 규모를 키웠다. 이는 'K팝 데몬헌터스'와 함께 한국 콘텐츠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다.K-콘텐츠, 미래를 위한 제언우리의 콘텐츠 경쟁력은 이미 여러가지 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 결국 자본의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문화 수출 50조 원, 문화시장 규모 300조 원 시대"를 공언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K팝 데몬헌터스'와 같은 글로벌 흥행 작품이 한국의 IP로 자리매김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목표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K-문화 IP를 한국이 직접 개발하고 소유하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돼야 한다.우리 5000년 역사상 이토록 세계가 우리 문화에 열광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이 중요한 시점인 이유다. 우리가 가진 뛰어난 이야기와 문화적 요소들을 단순히 글로벌 제작사나 배급사에게 '소재'로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제작과 창작의 중심'이 되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2025.07.19 10:00

5분 소요
불확실성의 시대, 스타트업이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방법 [순화동필]

전문가 칼럼

영화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누구도 믿지 마라.’태국이 정치인의 통화 내역의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패통탄 친나왓(Paetongtan Shinawatra) 태국 총리가 자국 군 간부를 험담하는 통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취임 10개월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이 통화 상대이면서 음성 파일 유출 당사자는 다름 아닌 38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한 뒤 2023년 퇴임한 훈 센(73) 전 캄보디아 총리다.패통탄 총리는 6월 15일 통화에서 지난 5월 28일 발생한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과 관련하여 태국군 지휘관을 반대편이라고 지칭하면서 비판했다. 또한 그 사령관이 국경 문제에 대해 ‘반정부적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훈센 전 총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만 해라. 내가 처리하겠다”라고도 한 내용의 전체 녹음파일을 훈센 전 총리가 6월 18일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게시하면서 태국이 발칵 뒤집어졌다.그 이후 태국의 수도인 방콕에서는 대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7월 1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패통탄 태국 총리에 대해 직무 정지 명령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 직전의 당일 아침, 태국 국왕이 새 내각 구성안을 승인했는데 여기에 패통탄 총리는 스스로 문화부 장관 겸직으로 이름을 올려 문화부 장관 자격으로 내각에 참가해 여전히 국정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 태국 총리로 인한 정치 불안, 경제성장률 2% 아래로 태국 연립정부 제2당이 상기 통화 유출 이후 연정 탈퇴를 발표했지만 간신히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다. 패통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9%까지 떨어졌고, 군부의 쿠데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이러한 정치적 불확실로 인하여 태국은 주요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고, 최초 36%의 상호 관세를 통보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2024년 2.5%의 경제성장률로 동남아시아 주요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태국은 올해에는 2% 이하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은 현재 폐쇄됐고, 이로 인해 두 나라 모두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태국에서 육로로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까지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이 도로를 통해 태국은 상대적으로 싼 원자재를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부터 가져오고 이를 가공해 제품으로 만들어 다시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수출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막혀 버린 것이다. 만약 다시 국경이 열리지 않는다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통화의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패통탄 총리는 통화에서 훈센 전 총리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보면 공적 대화라기 보다는 사적 통화에 가까운 것이다. 패통탄의 아버지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을 때 훈센은 2009년 탁신을 캄보디아 경제고문으로 임명하며 도피처를 제공하는 등 두 가문은 약 30년간 친하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훈센은 게다가 지난 6월 27일 TV 연설에서 ‘주변국, 특히 캄보디아와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 총리가 태국에 나타나기 바란다’라고 말했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의 딸 때문에 탁신과의 30년 우정이 깨졌다’라는 글까지 남기며 사실상 두 가문이 결별했음을 시사했다. 인도네시아 전·현직 대통령의 갈등 불거져 두 가문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대부분 5월 28일 태국 북동부 국경지대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인해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한 것을 원인으로 삼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많다. 탁신 가문을 계속 비판하고 있는 훈센과는 달리 패통탄 총리는 ‘훈센과의 통화는 사적 대화였으며, 공개 되어선 안 되는 내용’이라면서 ‘(훈센에게)충성을 맹세한 것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전략이었다’라고 해명했다. 패통탄의 말을 빌리자면 믿었던 삼촌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지금 표면화되진 않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도 조용히 두 가문의 결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의 지지율을 가지고 정치 왕조 구축을 꿈꾸던 조코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정치적 경쟁자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현 대통령과 손잡고 2024년 대선에서 선거법까지 바꿔가며 큰아들인 기브란을 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6월 초 인도네시아 퇴역 장성들이 기브란 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다. 탄핵 이유는 기브란 부통령이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부정이 있었고, 과거 그가 소셜미디어에서 프라보워 대통령을 비하한 의혹이 있다는 점,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에 따라 전·현직 대통령 간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지난해 선거 당시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를 담당하고 나머지는 부통령이 관장할 것이라고 두 가문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통령 당선부터 취임까지 실제 그러한 모습도 보였으나 대통령 취임 이후 부통령에 대한 소식은 거의 언론에 나오지 않고 있다. 아들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 정치 왕조를 이어가려던 조코위 전 대통령의 꿈이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권력은 비정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정치에 있어서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사례로 충분할 듯하다.

2025.07.13 10:00

4분 소요
“의대 쏠림은 기우”…첨단·계약학과 내신 합격선 ‘되레 상승’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5학년도 의대 모집정원이 확대되면서, 이공계 우수 학생들이 의대·치대 등 의료계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첨단학과·반도체학과 등 이공계 전공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주요 대기업들도 대학과 취업 연계형 계약학과를 잇따라 신설하며 인재 확보에 나섰다.이러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은 효과를 보였다. 실제 주요 대학의 첨단 및 계약학과 내신 합격선은 오히려 상승하거나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의대 쏠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취업 연계 학과들의 경쟁력은 흔들리지 않은 셈이다.의대 쏠림 우려에도...취업 연계 학과 ‘굳건’서울대학교는 2024학년도부터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했다. 고려대학교는 SK하이닉스와 연계한 반도체공학과, 현대자동차와 연계한 스마트모빌리티학부, 삼성전자와 연계한 차세대통신학과를 운영 중이다. 연세대학교 역시 LG디스플레이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 삼성전자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를 각각 계약학과 형태로 개설했다.이들 학과의 2025학년도 수시모집 내신 합격점수는 전년도보다 대부분 상승했다. 서울대 첨단융합학부의 경우, 수시 일반전형 합격자 내신 평균은 2.65등급에서 2.01등급으로, 지역균형전형은 1.29등급에서 1.26등급으로 높아졌다. 전체 수시 내신 합격점수 평균은 2024학년도 1.97등급에서 2025학년도 1.64등급으로 올랐다.고려대의 경우 반도체공학과, 스마트모빌리티학부, 차세대통신학과의 평균 합격선은 3.08등급에서 3.00등급으로 소폭 상승했다. 해당 학과들은 모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며, 계열적합전형과 학업우수전형으로 나눠 선발한다. 합격생 중 상당수가 과학고 출신이어서, 내신 3~4등급대 합격 사례도 다수 나타난다.연세대의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도 내신 평균 합격선이 2.04등급(2024학년도)에서 1.80등급(2025학년도)으로 상승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첨단 및 대기업 계약학과 전체 평균 내신 합격점수는 2.59등급에서 2.42등급으로 0.17등급 높아졌다. 의대 정원 확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대학의 이공계 첨단학과가 내신 기준에서 밀리지 않은 셈이다.삼성전자와 계약을 맺은 성균관대학교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과학인재전형에서 4.66등급에서 4.60등급으로, 탐구형전형에서는 4.06등급에서 3.96등급으로 합격선이 소폭 상승했다. 다만 같은 계약계열인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는 과학인재전형에서 4.83등급에서 4.98등급으로, 탐구형전형은 2.81등급에서 3.52등급으로 하락했으나, 해당 학과 역시 과학고 학생들이 다수 합격하는 특성을 감안하면 전반적인 변동 폭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서강대학교와 한양대학교는 소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서강대는 SK하이닉스와 연계한 시스템반도체공학과 내신 합격선이 4.24등급에서 4.45등급으로 하락했으며,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도 1.84등급에서 2.15등급으로 낮아졌다. 이들 대학의 경우, 일부 전형에서 의대 정원 확대의 영향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LG유플러스와 연계한 숭실대학교 정보보호학과(SSU미래인재전형)는 2025학년도 내신 합격선이 2.49등급으로, 전년도 2.47등급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 계약학과(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의 평균 합격선은 3.27등급에서 3.37등급으로 소폭 하락했다. SK하이닉스가 연계한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의 반도체학과 평균 합격선은 2.78등급에서 2.85등급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현대자동차와 계약한 고려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는 평균 내신 2.98등급으로, 전년도 3.16등급보다 상승했다. LG디스플레이와 연계한 연세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는 2.48등급에서 2.04등급으로 합격선이 높아졌다. LG유플러스와 연계한 숭실대 정보보호학과는 전년도와 유사한 2.49등급을 기록했다.2025학년도 대기업 계약학과의 내신 합격선은 삼성전자 3.37등급, SK하이닉스 2.85등급, 현대자동차 2.98등급, LG디스플레이 2.04등급, LG유플러스 2.49등급으로 나타났다. 대학별, 전형별 등급 차이는 존재하지만, 과학고·영재학교·자사고 출신의 합격생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단순 내신 등급만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합격선 추이가 주는 ‘시사점’2024학년도와 비교한 합격선 추이 자체는 시사점이 있다. 의대 모집정원이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학생들이 첨단학과에 꾸준히 진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고 등 이공계 특화 학교 출신 학생들에게 해당 학과의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일각에서 제기된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쏠릴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2025학년도 주요 첨단학과의 합격 결과는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첨단산업과의 연계성, 취업 연계 가능성 등이 맞물리면서 이러한 학과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의대 정원이 대폭 확대된 시점에서도 합격선이 유지되거나 상승한 점은, 해당 학과들의 경쟁력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도 읽힌다.

2025.07.13 09:20

3분 소요
‘부동산 신화는 왜 반복되는가’…새정부가 진짜 바꿔야 할 것은?[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지금이라도 서울 아파트를 사야 할까요?” 얼마 전 한 지인이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6·27 대출 규제 발표 직후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정권이 바뀌었잖아요. 민주당이 집권하면 집값이 오르던데, 이번에도 그런 거 아닌가요?”사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도, 낯선 것도 아니다. 정권과 집값 사이에 마치 공식이라도 있는 듯한 믿음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 믿음은 단순한 경제 해석을 넘어,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믿음은 정부 정책의 반복된 실패, 시장 참여자들의 학습된 경험,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 긴장감이 맞물리며 형성된 신화에 가깝다. 부동산 신화는 단지 과거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을 좌우하고 내일의 방향을 제약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신화는 우리 삶의 곳곳에서 우리의 선택을, 우리의 삶을 제어하고 있다. 이제 일반 국민, 정부, 그리고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신화’의 실체를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불패와 정권 프레임, 대중이 만든 신화가장 널리 퍼진 믿음은 ‘부동산 불패’다. 2000년대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일시적 조정을 제외하면 꾸준히 상승해왔다. 2017년 6월 6억40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22년 6월엔 13억원을 넘겼다. 그 후 정권이 바뀌고 금리상승등 변화도 있었지만 여전히 서울 아파트 가격은 올랐다. 그것도 다른 지역보다 많이. 사람들의 뇌리속엔 “결국엔 오르더라”는 학습효과가 남을 수밖에 없다. 산업화시대 이러한 경험을 두세번 해보았던 어르신들이 “그래도 집은 사놔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정부가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놔도 시장은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그러자 대중 사이에서는 정책보다는 흐름, 흐름보다는 ‘경험’이 더 신뢰받게 됐다. 이런 신념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또 하나는 ‘정권 프레임’이다. 정부가 바뀌면 시장이 바뀐다는 믿음은 사실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한쪽 정권은 규제를 풀고, 다른 정권은 세금과 대출을 조인다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정권 교체는 투자 타이밍의 신호처럼 작용하게 됐다. 실제로 2025년 들어 2030세대의 주택 매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그 배경에는 “이번에도 정권이 바뀌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믿음은 결국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조바심을 부추긴다.규제와 공급의 착각, 정부가 믿는 신화부동산 신화는 국민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나름의 신화를 품고 있다. 바로 정책만 잘 쓰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투기 억제를 위해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집값과 전셋값 모두 잡지 못한 채 정책 신뢰를 잃었다. 그 부작용은 커졌고, 이는 정권 교체의 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반대로 공급 확대를 앞세운 보수 정권도 ‘공급만 늘리면 된다’는 단선적인 접근에 머물렀다. 실제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숫자만 채운 공급은 시장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못한다. 공급정책이 투기자본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오히려 가격을 자극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마저도 목표한 공급조차 채우지 못했다.정부의 정책이 단기적인 처방에 그칠수록 시장은 냉정하게 반응한다. 규제를 강화하면 풍선효과가, 수요를 억누르면 튀어오르는 반작용이 반복됐고, 시장은 점차 정부를 믿지 않게 됐다. 아니 이제는 정부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정책이 발표되면 집값이 더 오른다는 신호가 되고 규제지역 지정은 오히려 ‘여기가 다음 투자처’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이런 의심을 행동으로 옮긴 이들이 결국 이득을 챙겼다. 반면 정부만 믿고 내집마련 시기를 늦추거나, 저축을 결정했던 사람들은 이제 서울에서의 내집 마련은 영영 불가능하게 됐다. 이번 6.27 대책이 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대출규제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반응을 효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시장은 잠시 멈춰 한발 물러선 것일수도 있다. 왜냐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국민과 시장은 ‘의심’한다. 결국 정부가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무기력한 반복이 아니라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 신호를 보내야 한다.집이 신분이 된 사회,구조가 만든 신화마지막으로 살펴볼 신화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믿음이다. 바로 ‘집이 곧 신분’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어디 사느냐”가 “누구인가”를 규정하고, 부모의 주거지가 자녀의 미래를 좌우하는 현실. 이 신화는 단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금의 계층 구조와 연결돼 있다.2022년 국토부 장관은 “집이 신분이 되는 주거신분제를 타파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온라인에서는 부동산 자산 규모에 따라 사람들을 ‘황족’이나 ‘노비’로 부르는 농담이 회자됐고, 무주택자를 지칭하는 ‘벼락거지’라는 말은 어느덧 일상의 언어가 됐다.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우리 사회가 주거를 둘러싸고 얼마나 날카로운 심리적 위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특히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기회가 한정된 지금, 집 한 채는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계층 상승의 거의 유일한 사다리가 됐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부동산에 대한 집착과 시장의 불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부동산을 둘러싼 신화는 정부의 정책 실패, 국민의 반복된 경험, 사회 구조적 불균형이 만들어낸 복합물이다. 국민은 ‘불패’를 믿고, 정부는 ‘통제’를 꿈꾸며, 사회는 ‘신분’을 걸어버린다. 이 믿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장을 왜곡해왔고, 그 결과는 오늘날의 혼란이다.이제 이재명 정부가 바람직한 주택 부동산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책을 과신하지도, 확신하지도 말고,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신화는 무너져도 그 자리에 남는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정책으로 시장을 휘두르는 힘이 아니라, 시장이 정책을 믿을 수 있는 신뢰다. 부동산 신화를 멈추는 일, 거기서부터 시장의 회복은 시작된다.

2025.07.13 09:00

4분 소요
키워드로 예측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미래 [스페셜리스트뷰]

유통

‘명품’이라 불리며 개인의 기호품으로 군림하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안착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몇몇 브랜드가 매출에서 글로벌 톱 5위 안에 들 정도로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글로벌 제품 출시 이전에 제품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위치도 공고히 하고 있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지난 30여 년간 성장세를 지속하던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은 요즘, 럭셔리 브랜드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지 몇 가지 요소로 예측해본다. 진정한 ‘명품’만이 살아남는다“요즘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요? 어렵죠.” 최근에 만난 모 럭셔리 브랜드 지사장의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럭셔리 브랜드의 경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지표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어렵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럭셔리 브랜드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은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초고가의 제품은 여전히 잘 팔리고,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대의 럭셔리 브랜드는 판매가 부진한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초고가의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의 하나는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대상이 경제적인 상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초고소득층은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건을 구입한다. 두 번째로 요즘 럭셔리 브랜드 중 거의 유일하게 성장을 하는 품목이 하이 주얼리라는 것도 한몫한다. 대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한 나라에 진출할 때는 일종의 패턴이 생긴다. 진입 초기에는 가방이나 신발 같은 가죽 액세서리, 이후에는 옷, 가구, 자동차 등의 라이프스타일 제품 그리고 하이엔드 시계와 하이 주얼리로 이어진다. 이는 가격이 낮은 순서가 아닌 품목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쉬운 순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다. 일상에서 가깝게 사용할 수 있는 품목부터 개인적이고 특별한 취향으로 옮겨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이 주얼리와 하이엔드 시계의 매출, 특히 하이 주얼리의 매출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당시 중국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에서, 중국으로 갈 예정이었던 몇몇 하이 주얼리 제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판매 신장의 한 요소로 작용했다. 하이 주얼리는 각 제품당 한 피스씩밖에 만들지 않는다. 즉 다른 나라의 VIP가 구입을 해버리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하이 주얼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부쩍 높아진 국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진 것도 매출 상승의 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최근에 톱 주얼리 브랜드가 우리나라 VIP를 대상으로 하이 주얼리 행사를 개최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글로벌 패션 전문 미디어 BOF와 매킨지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문가들은 2025년에 하이 주얼리의 성장 가능성을 4~6%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여타 품목의 성장세보다 높은 신장률을 예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30년 간의 럭셔리 브랜드를 경험한 고객들이 진짜 좋은 제품을 선별하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온 제품이라면 무조건 구입하던 시대도 있었고, 근사한 브랜드 네임에 아낌없이 투자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장이 확대된 만큼 소비자도 성숙해졌다. 에르메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까르띠에, 티파니,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부셰론, 프라다, 로로 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몽클레르 등 매출이 좋다고 알려진 브랜드는 유명하고 가격이 높아서가 아니라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이같은 상황은 고급 화장품이라고 하면 으레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을 연상하던 몇 년 전과 달리, 전반적인 국내 화장품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많은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 매출이 전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제품’을 알아보는 소비자의 눈이 한층 예리해진 것이다. 심지어 국내 화장품은 가성비도 갖추고 있으니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곤란한 시기이다.우리는 흔히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명품(名品)이라 부른다. 럭셔리 브랜드가 명품이라고 불리게 된 연유는 명확하지 않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를 하나의 용어로 정리하려는 과정에서 품질이 고급스럽고, 가격이 비싸며, 만듦새가 특별한 제품을 가리키는 적당한 단어로 선택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럭셔리 브랜드를 명품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범용화된 명칭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는 진짜 ‘명품’이라고 불릴만한 제품력과 디자인 그리고 견고한 브랜드 인지도를 갖추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의 양극화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번의 클릭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 필요해!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많은 럭셔리 브랜드의 고민은 “온라인에서 우리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격에 맞느냐’는 것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은 여전히 ‘대중적인’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고 위풍당당하게 오픈한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중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많지 않다. 이들이 겪은 오류의 하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단지 ‘제품’으로만 취급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디지털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에도 럭셔리 브랜드의 ‘톤앤매너’(tone & manner)를 입히는데 더 공을 들였어야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각 럭셔리 브랜드도 자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희소성을 강조하고, 웹사이트 환경에서도 브랜드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풍기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가 소위 ‘럭셔리 브랜드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서울, 강남, 백화점이나 부티크에서만 구입할 수 있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의 판매를 전국구로 확장시킨 것은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그럼에도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의 청담동에는 굴지의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달아 오픈하고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비전을 총 망라하여 보여주는 곳이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루이비통 메종 서울,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까르띠에 메종 청담, 하우스 오브 디올에 이어 몇 년 전엔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이 문을 열었고, 작년에는 오데마 피게 플래그십 스토어, 올 5월에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종 1755 서울이 오픈했다. 각 플래그십 스토어는 파리나 뉴욕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넘어서는 위용을 자랑할 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예술적인 특징을 가미한 것이 주목할 만 하다. 2026년에는 티파니가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계획이라는 점에서 한국 시장이 갖는 중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4년 여의 기간과 5억 달러(약 6850억원)를 들여 레노베이션 후 2023년 개장한 뉴욕의 티파니 더 랜드마크는 플래그십 스토어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곳이다. 브랜드의 심장으로서 또한 뉴욕의 명소로서 활약하는 티파니 더 랜드마크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한 이유는 하나다. 당장의 캐시카우 역할 보다는 럭셔리 브랜드 고객이 원하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경험’이 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는 한번의 클릭만으로는 도저히 충족되기 어려운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여 필요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온라인 쇼핑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오프라인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정성스러운 서비스와 환대, 제품을 고르는 시간과 과정을 놓칠 수 없는 법. 각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보다 VIP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예술 작품을 둘러보고 가끔은 식사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넓게 마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객단가’를 넘어서는 고급스럽고 독창적인 경험의 제공이라는 목적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의 결합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구입은 더욱 정교해지고 편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이 편리해질수록 ‘화면 안에서는 누릴 수 없는 품격있는 특별한 순간’을 제공하기 위한 오프라인 장소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은 ‘생필품’이 아닌 ‘기호품’이기 때문이다. 취향이 트렌드인 시대,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약진흔히 의식주라고 말한다. 사람이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의 순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외모를 다듬었으면 먹는데 좀 더 집중하고 그 이후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다. 럭셔리 브랜드의 진출 품목이 가방, 옷에서 음식, 가구, 조명 등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루이비통, 디올, 구찌, 조르지오 아르마니, 에르메스 등의 브랜드는 오래 전부터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확장을 시도했다. 펜디 역시 1987년부터 라이선스를 통해 가구를 소개해왔고, 2021년부터는 자사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종종 만나는 에르메스와 디올의 찻잔은 단지 주력 품목이 아니었을 뿐 오래 전부터 일상에 자리해왔다. 가구, 그릇, 커트러리, 타월, 에어팟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리빙 아이템을 늘려가는 것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옷이나 액세서리로만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을 것이고, 품목이 늘어남으로 인한 판매 증진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또 하나 다종다양한 제품과 가격대를 통해 자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성을 넓히는 요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특히 라이프스타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매년 4월이면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구 박람회인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패션 브랜드의 부스를 만나볼 수 있다. 일찌감치 박람회에 참가해왔던 펜디와 에르메스, 루이비통 외에도 돌체앤가바나, 로로 피아나, 프라다, 미우미우 등의 독특한 부스에는 패션 DNA가 가미된 리빙 제품을 보려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샹들리에로 유명한 바카라, 이탈리아의 유명 부엌 시스템인 보피, 생활 가전 다이슨 등의 국내 매출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얼마 전 다이슨은 새로운 청소기 펜슬백 플러피콘의 첫 론칭 장소로 서울을 택했을 정도로 ‘한국 소비자의 피드백’에 진심이다. 리빙 전문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할 것 없이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다’라는 암묵적인 정의에 몰입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의 경우 대표 제품으로서 기억되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되고 싶은 바램과 취향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흥미는 날로 높아질 것이다. 필자는 1993년부터 2023년까지 프리미엄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한 초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명품 시장의 성장과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제45회 한국잡지언론상 기자 부문을 수상했고, 럭셔리 브랜드를 주제로 대학과 기업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디엘(DL)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5.07.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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