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가성비 혁명’의 덫…중국 전기차, 출혈 속으로
- BYD發 치킨게임에...중국 전기차 시장 흔들
‘할인 전쟁’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중국 내부에선 자동차 업체 축소 필요성도 거론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사실상 시장에서 쫓겨난 전기차 기업은 16곳에 달한다. 테슬라 대항마로 통했던 중국 전기차 업체 ‘지웨 자동차’(极越)는 지난해 11월부터 자동차 생산을 멈췄다. 이 밖에도 웨이마 자동차(威马)와 가오허자동차(高合), 헝다 자동차(恒大) 등 전기차 업체도 폐업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견고하게만 보였던 중국 전기차 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셈이다.
이들 기업들은 막대한 외부 투자를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력 부재로 인해 시장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판매 부진이 이어지면서 자금 조달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누적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채 회생 기회를 잃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테슬라와 비야디(BYD) 등 선도 업체들이 주도한 가격 인하 경쟁 속에서 수익성마저 급격히 악화되면서, 생존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는 평가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균열
물량 공세의 최전선에는 BYD가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로 올라선 이 거인은 지난 3월 말부터 자사 주요 모델 가격을 줄줄이 인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소형 해치백 ‘씨걸’(Seagull)은 출시 당시 6만9800위안(약 1300만원)에서 최근 5만5800위안(약 780만원)까지 떨어졌다. 보조금도 아닌 순수 제조사 할인이다.
불과 1년 전 이 차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가성비 혁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가격 인하는 단순한 전략적 조정이라기보다 ‘정면 돌파’에 가깝다. 중국 내 전기차 시장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 속에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공격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BYD가 칼을 빼들자, 나머지 40여 개 브랜드가 뒤따랐다. 샤오펑(Xpeng), 리오토(Li Auto), 니오(NIO) 같은 신흥 전기차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가격 경쟁에 뛰어들었다. JP모건 보고서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평균 할인율은 16.8%다. 이는 지난해 평균 8.3%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성적표는 처참하다.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 50여 곳 중 수익을 낸 곳은 비야디와 리오토, 세레스뿐이다. 이들 세 곳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 여기에 가격 할인 경쟁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P모건 보고서에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할인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망도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출혈 경쟁이 중국 정부가 기대하던 ‘기술 주도형 산업재편’이 아닌 ‘소모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국 산업정보화부(MIIT)는 지난 5월 자동차 제조사 대표들을 소집해 “질서 없는 가격 인하를 중단하라”고 이례적인 지침을 내놨다. 가격 전쟁에선 승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중국의 인민일보 역시 “신차를 제로 마일리지 중고차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상황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이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중국의 공식 언론까지 나선 것은 가격 경쟁이 단순한 일시적 혼란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인 셈이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이 내수의 출혈 경쟁을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 수출 시장이 줄줄이 문턱을 높이거나 수요가 둔화되며, 중국산 전기차의 수출도 성장 정체를 맞았다. 내수 시장의 포화와 가격 전쟁, 그리고 글로벌 수요 둔화가 맞물리며 중국 전기차 산업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BEV + PHEV) 수출은 전년 대비 6.7% 증가한 128만4000대에 그쳤다. 2021년 39%, 2022년 119%, 2023년 76.7%라는 고성장 흐름을 고려하면, 사실상 ‘멈춤’에 가까운 결과다. 수출액 기준으로는 오히려 전년 대비 6.3% 줄어든 319억8000만 달러를 기록해, 2017년 수출 시작 이후 첫 역성장을 경험했다. ‘수출로 활로를 찾겠다’는 전략이 생각보다 빨리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현지 생산이라는 또 다른 해법을 모색 중이다. 비야디는 헝가리에 연내 공장 가동을 예고했고,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폐쇄 예정인 폭스바겐 독일 공장의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EU의 고율 관세를 피해 우회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BYD와 체리, 창안 등은 태국과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며, 동남아·중남미를 유럽·미국 시장의 수출 허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렇듯 중국 전기차 업계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시장의 반응도 냉담하다. 지난 5월 26일 기준 BYD 주가는 한 주 만에 8.6% 하락했다. 회사가 일부 모델에 대해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리오토는 분기 수익이 전년 대비 38% 급감했고, 샤오펑 역시 목표 판매량을 하향 조정했다.
아울러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자동차주는 대체로 -5% 내외의 낙폭을 기록했다. 전기차가 ‘차세대 산업’의 상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들의 평가 변화는 상당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두고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내 전기차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졌다”며 “특히 시장 1위 기업이 공격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면서 시장 전반에 혼란이 발생했고, 결국 중국 정부가 개입하게 된 것인데, 치열한 가격 경쟁이 이어지면서 모든 업체가 적자를 보는 구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중국에는 전기차 업체가 너무 많다. 중국 내부에서도 ‘10개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라며 “자연히 인수합병(M&A)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규모를 키우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게 되면,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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