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주주권 강화’ vs ‘경영 족쇄’…자본시장 격변 예고
- [더 강력해진 상법개정]①
이사 충실의무에 ‘주주’ 명시…지배구조 개선 신호탄
‘3%룰’ 강화에 재계 반발…소송 리스크·경영 위축 우려도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 한국 자본시장의 지형을 바꿀 중대한 분기점으로 떠올랐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을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시장에서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는 반면, 재계는 소송 남발과 경영 위축을 초래할 ‘경영 족쇄’가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법 개정의 효과와 부작용을 둘러싼 해석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향후 자본시장에 미칠 파장을 두고 논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 충실의무 ‘회사’에서 ‘주주’로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상법 제382조의3을 개정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명시적으로 확대한 점이다. 나아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그 의무를 한층 구체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물적분할 후 자회사 중복상장이나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불공정 합병 등을 겨냥한 조치다. 결과적으로 일반 주주들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 이사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직접적인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시장은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개정안 통과가 가시화된 7월 3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34% 상승한 3116.27에 마감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개정이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지배구조 리스크 완화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시켜 자금 유입을 촉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반면 재계는 즉각 공동 성명을 내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주요 경제 8단체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되면서, 경영 결과에 불만을 품은 주주들의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이 단기적인 주가 하락을 야기할 경우, 이사들이 형법상 배임죄로 고소당할 수 있는 사법 리스크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법적 부담이 결국 혁신적이고 과감한 경영 판단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법조계에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한국 법원이 오랜 기간 경영판단의 원칙을 넓게 인정해온 만큼, 소송이 급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이번 개정을 통해 이사의 의무 범위가 보다 명확해졌고,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평가다.
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주주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애매한 데다 주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어, 이사의 판단 기준이 오히려 더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법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의 법무 비용만 늘어날 수 있으며, 로펌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룰’ 놓고 독립성 확보 vs 경영 개입 논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항상 합산해 3%로 제한하는 ‘3%룰’ 강화도 주요 쟁점이다. 기존에는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만 이 합산 규정이 적용돼 지배주주가 감사위원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지만, 개정안은 이러한 허점을 없애고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비됐다.
이는 감사위원회의 감시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이 조항이 행동주의 펀드나 투기성 자본의 경영 개입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소수 지분만으로 감사위원 자리를 확보한 뒤 과도한 배당을 요구하거나 주요 기술과 경영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재계는 보완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가 합리적인 정보에 근거해 선의로 내린 경영 판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하고 적대적 M&A 시도에 대응할 수 있는 포이즌 필(Poison Pill),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빠진 집중투표제·다중대표소송…‘반쪽 개혁’ 지적도
한편 이번 개정 과정에서 당초 핵심 쟁점으로 논의됐던 일부 조항은 최종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소액주주가 특정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불법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 확대가 대표적이다. 이 조항들은 재계의 부담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는 이번 개정안이 일정한 진전을 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핵심 개혁 과제가 빠진 점에서 ‘불완전한 개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조항들을 향후 최우선 과제로 삼아 다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어,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의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상법 개정은 주주권익 보호와 경영 자율성이라는 오랜 과제에 새로운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 법률 개정으로 변화의 방향은 설정됐지만 그로 인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제도를 안착시키는 것은 이제부터의 과제다. 앞으로 이어질 법원의 판례 정립, 국회의 보완 입법 논의,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의 적응 과정이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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