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K-스타트업의 ‘학연 카르텔’ 해결 위한 고민 필요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 한국 스타트업의 ‘학연 카를텔’…독이 아닌 약으로 전환해야
‘카르텔’ 넘어 ‘학력 자본’으로…상생의 생태계 필요 조건

[최화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벤처/창업 겸임 교원]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교 출신 창업 선배들과 만날 기회가 더 많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열린 창업 관련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한 대학생 창업자의 입에서 나온 희망 사항이다. 대학이 학생 창업자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재무적 지원이 전부는 아닙니다. 모교 출신 창업 선배들의 관심과 조언이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교에 동문 창업자 연락처를 관리하고 후배인 학생 창업자들에게 공유하기를 희망했다.
대학생 창업자가 모교 출신 창업 선배를 찾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맥은 창업자에게 중요한 자원이다. 스타트업은 인력을 채용할 때, 공개 채용보다 주변에서 추천을 받은 인재를 선호한다. 투자를 집행하는 벤처 캐피털들 역시 연줄을 이용해 피투자 기업 구성원들의 인적 사항을 검증한다. 이처럼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카르텔’ vs 북미의 ‘마피아’…차이점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이 형성되고 있다. 구성원 간 관계가 유난히 끈끈한 일부 집단은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키우면서 외부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외부에서는 그들을 ‘카르텔’로 지칭하기도 한다.
카르텔의 본래 의미는 ‘공동 목표를 위해 구성한 연합체’지만, 국내에서는 통상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휘두르는 집단을 뜻한다. 언론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 ‘법조 카르텔’ ‘정치 카르텔’ 등을 떠올려 보면, 카르텔이라는 단어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언젠가부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술 창업을 하려면 ‘A대학’ 출신이어야 한다, 소셜 창업을 하려면 ‘B대학’ 출신이 유리하다는 등 뒷이야기가 주변에서 흔하게 들린다. ‘C대학’은 창업자가 대학원이 아닌 학부 졸업생이어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성골로 대접받는다는 다소 과장된 억측도 있다. 업계는 해당 소문들을 지나가는 풍문으로 치부하면서 동시에 적극 부정하지도 않는다.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집단은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국내 집단의 구심점은 대학인 반면 해외는 출신 기업을 중심으로 집단이 형성되어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미국 실리콘 밸리에는 전자 결제 스타트업 페이팔(Paypal)을 만든 창업자들이 업계 곳곳으로 나아가 활동하는 ‘페이팔 마피아’가 있다. 이들은 페이팔을 떠나 연쇄 창업자로 혹은 투자자로 활동하면서 행동 반경을 넓혀 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반 분석 서비스 스타트업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를 퇴직한 직원들이 스타트업들을 잇따라 창업하면서 그들을 지칭하는 ‘팔란티어 마피아’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챗GPT를 만든 스타트업 오픈AI 출신 창업자들을 일컫는 ‘오픈AI 마피아’ 역시 인공지능 산업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다.
마피아 구성원들은 같은 스타트업 출신이다. 그들은 기업을 세우고 성장하는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이다. 가까이서 일한 동료이기에 서로의 능력을 존중한다. 서로를 돕고 지지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처럼 북미 스타트업 생태계의 마피아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카르텔은 다른 가치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그들이 미래 세대를 품는 방식에도 차이점이 있다. 북미의 마피아는 기업 동문 출신 후배들에게 기회를 적극 공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반해 국내의 카르텔은 대학 동문들에게 비교적 그 기회가 전유되는 경향이 있다.

학생 스타트업 수 감소, 서·연·고·카이스트 출신 창업가 수는 증가
얼마 전 공개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전국 대학별 창업지원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대학에서 설립된 학생 스타트업 수는 전년 대비 7.0%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대·연세대·고려대·KAIST의 창업자 수는 전년 대비 31.4% 증가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들고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소수 대학에서만 창업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창업자가 증가한 대학들을 놓고 원인과 해석은 분분하지만, 대다수 관계자들은 동문의 힘이라고 말한다. 창업 선배들이 출신 모교에 꾸준히 지원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창업자가 증가한 대학들은 창업자 졸업생이 많은 학교로 꼽힌다.
이는 학연을 둘러싼 국내 스타트업계의 장단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점은 창업 인기가 높은 소수 대학에 자원과 지원이 편중되는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점은 대학이 선후배 창업가 사이 연결 고리를 만들고 인맥을 강화한다면, 언제든지 캠퍼스에 창업 인기를 높일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뿌리박힌 학연은 누구도 긍정하지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는 존재이다. 일각에서는 그들을 카르텔로 지칭하며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다른 쪽에서는 학연을 카르텔이 아닌 학력 자본, 즉 자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의견을 가진 이들은 활동 방향과 방식을 조금 바꾼다면 대학 창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창업 선후배 간의 잦은 교류는 궁극적으로 모교의 창업 인기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범죄 조직을 일컫는 마피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리콘 밸리의 마피아들은 재창업의 씨앗을 뿌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학연 카르텔도 창업자들을 창업 선후배들 모두의 성장을 돕는 학력 자본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포럼에 참석한 창업자의 발언처럼 창업 선배는 모교라는 동질감과 함께 후배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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