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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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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매직 새 얼굴로 ‘M&A 전문가’ 등판…실적 악화에 매각 탄력받나

산업 일반

SK매직이 렌털기업을 넘어 ‘생활 구독’ 서비스 사업을 확장하겠다며 ‘홈 라이브 큐레이션 컴퍼니’로의 도약을 선언한 지 1년여가 지났다. 올해부턴 가전업계의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AI 사업 등에 집중해 ‘미래 기술 중심의 가전 컴퍼니’로 거듭나겠단 포부다.새로운 청사진에 맞춰 SK매직은 최근 대대적인 경영진 교체를 단행했다. 우선 신임 대표로 김완성 SK주식회사 머티리얼즈 BM혁신센터장을 선임했다. 김 대표는 1974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SK주식회사에 입사해 SK주식회사 사업지원담당, SK머티리얼즈 BM혁신실장, BM혁신센터장 등을 역임했다.특히 주목할 점은 김 대표가 인수합병(M&A)·조인트벤처(JV) 딜 이후 기업 가치를 성장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밸류업 전문가’라는 것이다. 업계에선 윤요섭 전 대표의 임기가 6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그룹의 밸류업 전문가를 자회사 대표로 선임한 것이 SK매직의 매각 논의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밸류업 전문가’ ‘전략통’ 김완성 대표 선임 SK네트웍스는 경영효율 제고의 일환으로 SK매직 매각을 내부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SK매직의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란 말도 나왔지만, 결국 유보됐다. SK네트웍스가 생각한 매각 적정가와 SK매직의 시장 밸류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SK네트웍스는 2016년 사모펀드(PEF)로부터 동양매직을 6100억원 가량에 인수했던 바 있다.김 대표 선임에 대해 SK매직 측은 “SK매직이 이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 엔진을 찾을 시기”라며 “제품 및 디자인 개발을 강화함은 물론 AI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SK매직 매각 논의와 관련해선 “계획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SK매직 관계자는 “김 대표가 워낙 업계에서 알아주는 전략통이기 때문에 사업적인 부분을 챙기기 위해 선임된 것”이라며 “아직 선임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업무 파악에 우선 집중하고 있으며, M&A나 기업공개(IPO) 계획은 전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SK매직은 경영전략본부장(CFO) 교체도 진행했다. SK네트웍스의 글로벌 투자 및 신성장 사업을 주도해 온 정한종 SK매직 기타비상무이사를 CFO로 임명하며 기존 이영길 CFO는 물러났다. 정 신임 본부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비즈니스스쿨을 거쳐 삼성전자에서 약 17년간 재무와 회계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20년 사상 최대 실적 달성 후 하향곡선 SK매직이 이전 경영진 임기가 남아있던 상황에서 인사를 단행한 이유는 SK매직의 실적 악화가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SK매직은 2020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한 이후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매직의 매출은 ▲1조245억원(2020년) ▲1조774억원(2021년) ▲1조733억원(2022년), 영업이익은 ▲816억원(2020년) ▲712억원(2021년) ▲634억원(2022년)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274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632억원)보다 115억원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올해 112억원으로 지난해 206억원보다 94억원 줄었다.반면 경쟁사인 코웨이는 외형 성장과 수익성 모두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웨이의 매출은 ▲3조2374억원(2020년) ▲3조6642억원(2021년) 3조8561억원▲(2022년) 영업이익은 ▲6064억원(2020년) ▲6402억원(2021년) ▲6773억원(2022년)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매출·영업이익은 각각 9482억원, 175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9280억원, 영업이익 1726억원)보다 202억원, 29억원 올랐다.최근 렌털업계가 동남아시아와 미국 등을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SK매직의 말레이시아 법인도 이렇다 할 실적이 아직은 없는 상태다. SK매직은 2018년 SK네트웍스를 통해 말레시이아에서 가전 렌털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19년 말레이시아 사업을 SK네트웍스로부터 인수해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아직 적자를 내는 상황이다.반면 코웨이의 해외시장 공략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코웨이의 말레이시아 법인 매출 증가율은 9802억원(2021년)에서 1조916억원(2022년)으로 11.4% 증가했고 미국에선 같은 기간 동안 17.8% 늘었다. 쿠쿠홈시스의 공세도 무섭다. 쿠쿠홈시스의 말레이시아 시장 매출은 지난해 2932억원으로 2021년과 비슷한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국내에서 호평받는 신규 공기청정기 모델들의 론칭, 정수기의 후속 모델 개발로 신규 고객 유치에 힘써왔으나 많은 고객의 재계약 시점이 도래하며 실적에 일시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다. 렌털업계 ‘빅3’(코웨이·SK매직·쿠쿠홈시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SK매직이 출항한 ‘김완성호’가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렌털업계가 전체적으로 업황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실적이 안 좋은 곳도 있다”면서도 “여름철엔 얼음정수기가 잘나가고, 장마철엔 제습기 판매가 잘 돼 판매량이 안정적인 업계기도 해 기업마다의 마케팅 전략과 경영진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2023.07.25 07:00

4분 소요
“7월 내내 비 온다”…장마 괴담에 ‘이 제품’ 불티나게 팔렸다

유통

제주도와 남해안에 25일 장맛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역대급 장마 기간에 대비하기 위해 제습 가전을 미리 구매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이날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자랜드가 이달 1일부터 18일까지 제습기 판매량을 조사하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들어 습한 날씨가 이어진 데다 오는 7월 한 달여에 걸쳐 긴 장마가 이어진다는 불안감이 제습 가전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실제 전자랜드에서 팔린 의류 관리기와 의류 건조기 등도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판매량이 각각 124%, 26% 늘었다.온라인몰에서도 제습 가전이 인기 있는 건 마찬가지다.위메프에 따르면 5월 29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제습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53% 증가했고 제습제와 건조기 등도 같은 기간 각각 250%, 42%가량 매출이 올랐다.위메프는 올해 장마가 긴 만큼 제습 가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다양한 판매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장마가 기승인 여름 가전으로는 그동안 에어컨이 많이 팔렸다. 그러나 전기료 인상 등으로 인해 에어컨을 오랜 시간 가동하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제습 가전에 눈을 돌리고 있다.특히 장마철에는 실내 습도가 70% 이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습도를 효과적으로 낮춰야 하는 장마 기간에는 제습기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기업들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며 다양한 제습 가전을 내놓고 있다. 저전력과 편의성을 강조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제습기는 가동 때 소음이 발생하고 실내 온도가 높아지는 게 단점인 만큼 저소음 등을 내세운 제품도 눈에 띈다.SK매직은 올해 3월 출시한 ‘초슬림 제습기’로 장마 특수를 누리고 있다. 제품을 사용할 때 실내 온도 상승이 적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장마 기간이 가까워지면서 세 차례 완판에도 성공했다.코웨이는 공기 청정 기능이 탑재된 제습기 ‘듀얼클린 제습공기청정기’를 출시했다. 원하는 습도를 설정하면 제습기가 알아서 제습 기능을 구동해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관리한다.가전 명가인 LG전자는 ‘휘센 듀얼 인버터 제습기’로 올해 제습 가전 시장을 공략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이 등록돼 판매되고 있는 동급 용량의 제습기 중 제습 효율이 가장 뛰어나다고 회사는 설명했다.삼성전자는 자사의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스마트싱스’를 적용한 제습기를 판매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소비전력을 줄일 수 있고 저소음 모드를 통해 도서관보다도 조용한 34데시벨(dB) 수준의 소음을 낸다.

2023.06.25 17:39

2분 소요
역대급 장마 소식에 ‘이 제품’ 불티나게 팔린다

유통

지난해 한반도를 강타했던 장마가 올해도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면서 제습기 판매량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급 호우가 동반될 것이란 우려에 서둘러 장마철 대비에 나선 사람들이 많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티몬에서 거래된 계절 가전 제품의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73% 늘었다. 수요가 몰린 품목은 제습기다. 이 제품을 구매한 고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91% 늘었고 거래 규모의 증가 폭도 1년 전과 비교해 1241% 증가했다.폭우로 인한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제습기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위닉스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부터 21일까지 이 회사 제습기를 구매한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47% 늘었다. 위니아도 지난 5월 한달 동안 제습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70% 증가했다고 밝혔다.제습기뿐 아니라 선풍기, 공기청정기 등 장마철 대비 가전의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레인부츠와 레인코트 등 이른바 ‘레인패션’의 구매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11번가에선 5월 한달 동안 레인부츠 거래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278% 증가했고 지그재그에서도 같은 기간 레인부츠와 레인코트의 거래 규모가 각각 32배, 39배 늘었다.올해 이른 장마 소식이 전해진 만큼 다양한 제품으로 산뜻한 여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 강수량은 평년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많을 가능성이 각각 40%로 나타났다. 다른 달에 비해 비가 더 많이 올 수 있단 뜻이다.올해 6월과 8월은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이 올 가능성이 각각 50%, 30%로 나타났다. 열대 태평양에서 발달하고 있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한반도 부근에 많은 양의 수증기가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다.한반도에선 통상 장마가 6월 말께 제주 지역에서 시작해 중부 지역으로 정체 전선을 확대하며 한 달 동안 이어진다. 올해 장마철도 이달 말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크지만 전문가들은 내륙 지역의 경우 평년보다 다소 늦어질 확률이 높다고 예상한 바 있다.

2023.06.07 21:49

2분 소요
이틀에 한 번 꼴로 내리는 비…제습기 판매는 '맑음'·에어컨은 '흐림'

산업 일반

올해 상반기 이상기후로 가전 시장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4월엔 ‘역대 가장 늦은 한파 특보’가 내리고, 지난 5월에는 ‘역대 최다 강수일수’를 기록하자 에어컨 대신 제습기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2021년 5월 전국 강수일수는 14.3일.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왔다. 최근 10년 평균인 8.1일과 비교하면 2배가량 많다. 특히 비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경기는 5월 한 달 동안 16.2일, 충청권역은 16.6일 비가 왔다. 통상 제습기 수요는 장마가 계속되는 7~8월에 가장 높은 판매량을 보인다. 하지만 최근 계속되는 비로 여름의 관문에 이르기도 전에 제습기 수요가 폭발했다. 6일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3일까지 제습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6% 뛰었다. 제습기와 함께 습도조절을 위한 가전 판매가 함께 상승했다. 비를 맞은 후 옷감이 상하지 않도록 해주는 의류관리기는 전년 대비 15.8% 더 팔렸고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해주는 공기청정기 매출은 29.2% 늘었다. 반면 에어컨과 선풍기 매출은 각각 9.2%, 7% 감소하는 등 냉방 가전 수요는 위축됐다. 온라인 쇼핑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온라인몰인 G마켓에서는 제습기 판매량이 2.5배로 늘었지만, 에어컨 판매량은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 ‘오늘의집’에서는 플랫폼 내 제습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00% 늘었다. 가전제품 양판점에서도 제습기와 냉방 가전의 희비가 갈렸다. 롯데하이마트에선 5월 들어 제습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50% 늘었다. 같은 기간 의류관리기 매출액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증가했다. 반면 에어컨, 선풍기 등 냉방 가전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전자랜드도 지난달 제습기 판매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27% 늘었지만, 에어컨은 10%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제습기 없이 에어컨에 내장된 제습 기능만 사용하던 가구들이 제습기를 장만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장마가 본격화되면 제습기 수요는 물론 의류관리기, 신발관리기 등 장마를 위한 제품들의 수요는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nm.yeongeun@joongang.co.kr

2021.06.07 17:04

2분 소요
[틈새가전 전성시대] 의류관리기·공기청정기·건조기 판매 ‘불티’

산업 일반

소비 트렌드와 생활환경 급변 영향…제습기·송풍기·안마의자·에어프라이어도 인기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오븐…. 일반 가정에서 많이 쓰는 가전(家電)은 대략 이런 정도였다. 요즘은 확 달라졌다. 소비 트렌드와 생활환경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의류관리기·공기청정기·제습기·송풍기·건조기·안마의자·에어프라이어·음식물처리기와 같은 이른바 ‘틈새가전’이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표적 전통가전이 진입할 수 없는 틈새시장이 생겨나면서 기존 가전 업계 전략에도 중요한 변곡점이 생겼다. 국내만의 현상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틈새가전은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광주광역시 북구 첨단산업단지. 이곳에 있는 중소기업 DH글로벌·위니아글로벌테크의 생산라인에선 낯선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 시장에 공개된 신제품이 분주하게 조립과 검사 과정을 거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전자가 개발과 설계·디자인을 맡은 의류관리기 ‘에어드레서’다. 삼성전자는 광주사업장에 에어컨 등의 소비자가전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에어드레서는 직접 만들지 않는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아웃소싱 형태로 DH글로벌·위니아글로벌테크에 생산을 맡겼다. 생산라인을 따로 까는 데 시간과 비용과 많이 들기 때문이다. 대신 우수한 역량을 갖춘 업체와의 협업이 시장에 좀 더 빨리 진입하고 수급 안정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여겼다. DH글로벌·위니아글로벌테크는 그간 대유위니아에 일부 생활가전을 납품하기도 했다.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8월 서울 청담동 드레스가든에서 에어드레서 출시 행사를 열고 의류관리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밝혔다. 의류관리기는 외출할 때 입었던 의류에 묻은 먼지나 밴 냄새를 제거해주고, 의류의 주름을 펴서 소비자가 세탁소에 옷을 자주 맡기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의류관리기 개발과 출시에 나선 이유는 국내 의류관리기 시장이 그만큼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가전 업계에 따르면 의류관리기는 100만~200만원대의 고가 제품인 데도 지난해 15만대 수준에서 올해 약 30만대까지 국내 판매량이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의류관리기 시장은 삼성전자의 가전 부문 최대 경쟁사인 LG전자가 2011년 ‘트롬 스타일러’ 1세대 모델을 선보이면서 개척했다. 트롬 스타일러는 2015년에 2세대 모델이 나오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 LG 이어 삼성도 의류관리기 시장에 뛰어들어 트롬 스타일러는 특허 출원된 ‘무빙 행어’ 방식을 이용해 의류에 묻은 먼지를 제거한다. 분당 약 200회 의류를 흔든 다음 거기서 떨어진 먼지를 포집한 스팀을 본체 하단에서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는 원리다.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별도의 먼지 포집 장치를 갖춘 ‘에어 분사’ 방식을 적용했다. LG전자 측은 이 방식이 제품 원가 상승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삼성전자 측은 의류를 흔들어 털지 않아도 돼 진동과 소음이 더 적게 발생하는 방식이라고 반박한다. 냄새 역시 트롬 스타일러는 스팀 방식으로 제거하지만 에어드레서는 분해 필터의 광촉매 반응으로 제거해 방식에 차이가 있다. 또 OEM인 에어드레서와 달리 트롬 스타일러는 LG전자 경남 창원 공장에서 자체 생산 중이다.급성장 중인 의류관리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은 삼성 전자만이 아니다. 가전 렌털(대여) 부문 국내 1위 기업인 코웨이도 지난 5월 공기청정 기능을 결합한 의류관리기 ‘FAD-01’ 출시로 신사업에 뛰어들었다. 코웨이 관계자는 “8월부터 렌털 판매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다”며 “10월 첫 주에만 이달분으로 준비했던 공급량인 4000여 대가 ‘완판(완전판매)’됐을 만큼 인기”라고 전했다. 이 같은 의류관리기 열풍은 일명 ‘틈새가전’, 즉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같은 전통가전이 진입할 수 없는 틈새시장을 개척한 비주류 가전들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더는 비주류라 칭하기도 어려울 만큼 성장세가 뚜렷하다.이런 틈새가전엔 의류관리기 외에도 공기청정기·제습기·송풍기·건조기·안마의자·에어프라이어·음식물처리기 등이 있다. 틈새가전의 인기는 각 가정의 소비 트렌드와 생활환경이 급변한 것과 관련이 깊다. 예컨대 의류관리기와 공기청정기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몰고 온 국내 대기환경 변화로 의류나 집안의 먼지 제거가 시급해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특히 필터를 쓰는 현대식 공기청정기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존재해왔던 제품임에도 국내에선 대형 병원 무균실에서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등 일반 수요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세먼지 공습으로 일상생활에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일반적인 수요 또한 몇 년 사이 급증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44㎍/㎥, 초미세먼지는 25㎍/㎥로 미국 로스앤젤레스(각각 33㎍/㎥와 14.8㎍/㎥), 프랑스 파리(각각 21㎍/㎥와 14㎍/㎥)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없어도 그만인 제품에서 필수품으로 이에 에어글(미국)·에어퓨라(캐나다)·아이큐에어(스위스)·블루에어(스웨덴) 등 해외 전문 브랜드가 국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한편, 최근엔 삼성전자·LG전자 외에도 SK매직·위닉스 등의 국내 후발주자들이 공기청정기 개발과 출시에 열을 올리면서 시장점유율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40만대까지 증가했던 국내 공기청정기 판매량은 올해 총 250만대로 한층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014년엔 40만대 이하였다가 2016년엔 100만대를 돌파하는 등 의류 관리기처럼 매년 급성장 중이다.같은 공기청정기 안에서도 틈새가전이 또 있다. 가습 기능 70%, 공기청정 기능 30%의 융합 제품인 에어워셔다. 신개념 가습기로도 불리는 이 제품은 기존 가습기 수요까지 흡수하면서 연간 판매량이 30만~40만대 수준까지 증가했다(업계 추산).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제품들이 미세먼지 공습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약 ‘생활필수품’으로 지위가 높아진 것”으로 해석했다.틈새가전 중 제습기와 송풍기의 인기도 빼놓을 수 없다. 가습기와 상반된 기능을 하는 제습기는 실내 습기를 제거해준다. 공기의 유동을 일으키는 송풍기는 기존에 많던 산업용이 아닌 소형의 가정용 송풍기를 가리킨다. 여름철마다 실감할 수 있게 된 두 틈새가전의 인기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한반도가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는 환경적 변화와 연관이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해수면은 2010년 이후 매년 7월 평균 0.34도씩 온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여름철 다습한 폭염을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력 소비량이 많은 가전인 에어컨을 틀 경우 각 가정에서 누진세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이 만만찮아진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 제습기·송풍기 인기는 기후변화와 관련 집에서 제습기를 쓰는 주부 장선자(64) 씨는 “심하게 덥지 않을 땐 에어컨 대신 제습기만 틀어도 체감온도가 낮아진다고 해서 (제습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효과를 보고 있다”며 “빨래하고 나서도 옷을 말릴 때 습기 때문에 꿉꿉한 경우가 많은데 제습기가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위닉스 관계자는 “지난 5월 기준 제습기의 국내 온라인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99%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송풍기의 경우는 에어컨과 함께 쓸 때 냉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 인기다.건조기도 틈새가전 전성시대를 맞아 꽃을 피우고 있다. 주로 세탁된 의류를 열풍으로 완전히 건조시켜주는 의류건조기를 가리킨다. 과거엔 아파트 등의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어 말리는 가정이 절대적으로 많았지만, 베란다를 좁게 조성하면서 거실이나 방을 넓게 만드는 건축 방식이 유행한 후부터는 빨래를 널어 말릴 공간 확보가 쉽지 않아졌다. 또 기존에는 가정에서 전업주부가 가사에 집중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맞벌이 가정이 급증하다보니 빨래를 털고 널었다가 회수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동에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세탁기와 짝을 맞춰 구매해야 하는 혼수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건조기가 인기를 모으게 된 배경이다.2016년 10만대, 지난해 60만대였던 국내 건조기 판매량이 올해는 150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연간 세탁기 판매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시장 규모가 전통가전마저 위협할 만큼 급성장했다는 얘기다. 의류관리기처럼 건조기도 LG전자가 선발주자다. 가장 먼저 국내 건조기 시장에 뛰어들어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쓴 결과 점유율이 현재 65%를 넘는다. 신기술을 적용해 지난해 말 출시한 ‘트롬 듀얼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대용량 건조기로 승부하고 있다. 지난 3월에 국내 최초 14㎏ 용량의 ‘그랑데’ 건조기를 선보이는 등 대용량으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이 회사의 국내 건조기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이 대용량 제품에서 발생 중이다. ━ 꾸준히 성장 중인 글로벌 건조기 시장 대유그룹 산하 대우전자도 올 초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클라쎄’ 건조기를 출시하면서 지난 5월까지 누적 판매량 5000대를 돌파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한편 의류관리기와 공기청정기의 경우처럼 미세먼지 공습이 건조기 열풍의 또 다른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야외와 맞닿은 아파트 베란다나 단독주택 마당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일이 비위생적일 수 있다는 소비자들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보다는 제품 자체의 편의적인 기능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글로벌 건조기 시장은 밀레·블룸베르크(이상 독일)·베코(터키)와 같은 해외 브랜드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시장조사업체 GII에 따르면 글로벌 건조기 시장은 2016~2020년 연평균 4.27%씩 증가할 전망이다. 노경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세탁기와 비슷하게 보급률 80%까지 달성된다고 가정하면 국내 건조기 시장은 7~8년 더 성장할 여력이 있다”며 “지금껏 없던 시장이라 새 모델이 나올수록 수요가 계속 생기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과거엔 찜질방 등 공공장소에서나 많이 보이던 안마의자도 가정에서 흔히 쓰면서 틈새시장을 형성했다. 간편하게 안마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전기식의 의자 모양 장비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안마의자 시장은 2013년 1700억원, 2015년 3500억원에서 지난해 6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올해는 이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국내 1위 안마의자 업체 바디프랜드는 지난 상반기 판매량이 6만5934대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0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연매출 4000억원대(지난해 기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웰빙(wellbeing)’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된 데다, 사회적으로 고령화 추세가 심화하면서 가정용 안마의자 수요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그런가 하면 에어프라이어는 1인 가구 급증에 힘입어 인기를 끌고 있다. 네덜란드 기업 필립스가 처음 선보인 에어프라이어는 기름 없이 뜨거운 공기만으로 집안에서 각종 튀김요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틈새가전이다. 요리할 때 냄새나 연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 기능 면에서 일반 오븐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튀김요리를 중점적으로 즐기는 가정에서라면 고려할 만하며,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이 최대 무기다. 3~5리터의 소용량 제품은 수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어서 고가의 대용량 오븐을 필요로 하지 않는 1인 가구일수록 구입을 염두에 두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식습관 변화와 간편식 선호 경향도 이런 트렌드 확산에 영향을 미친다. 업계는 지난해 8만대였던 국내 에어프라이어 판매량이 올해는 3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음식물처리기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집안에서 먹다 남은 각종 음식물쓰레기를 완전히 건조시켜 분말 형태로 만들어 부패를 막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틈새가전이다. 가격 비교업체 다나와에 따르면 국내 음식물처리기 거래액은 올해 상반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14% 증가했고 거래량도 같은 기간 74%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가사에 대한 시간적 부담을 느끼는 맞벌이 가정이나 1인 가구가 증가한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스마트카라 같은 중소기업이 음식물처리기 시장에 진입해 짭짤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음식물쓰레기는 여러 번에 걸쳐 모으면 해충이 쉽게 꼬이고 악취 같은 비위생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자주 처리해주는 게 좋다”며 “이를 번거롭게 느끼는 가정에 편의성을 제공해주는 차원에서 ‘CS-25’ 등 친환경 음식물처리기 모델을 제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중견·중소기업에도 기회의 장 이 밖에 좁은 공간을 청소할 수 있게 해주는 핸디형 청소기, 게이머들을 유혹하는 게임용 모니터 같은 틈새가전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처럼 종류도, 수요도 다양해진 틈새가전의 급성장은 업계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 또는 ‘굳혀졌던 판도를 바꿀 절호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전통가전과 비교해도 틈새가전의 성장세가 압도적으로 빨라서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국내 의류관리기와 건조기, 공기청정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90%, 190%, 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냉장고(30%)나 세탁기(28%), TV(19%)의 판매 신장률보다 크게 앞섰다. 다른 온·오프라인 판매망에서도 수치만 조금씩 다를 뿐 상황은 비슷하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 틈새가전은 전체 가전 시장 내에서 점유율이 7% 안팎에 불과하지만 성장세가 워낙 두드러져 금세 10~20%대를 차지할 전망”이라며 “특히 전통가전에서 통용되던 ‘제품 교체 주기’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신규 수요가 계속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이 때문에 지금껏 경쟁사에 뒤처졌던 기업이더라도 잘 만든 틈새가전을 발판삼아 역전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백색가전만큼은 국내에서 LG전자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평을 받던 삼성전자가 에어드레서 등으로 후발주자 되기를 자청하면서까지 반격에 나선 것도 그래서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대기업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많은 중견·중소기업들에게도 틈새가전은 기회의 장이다. 그간 대기업이 주목하지 못했던 틈새가전을 개척해 순식간에 강소기업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각종 틈새가전에 대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8.10.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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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보다 뜨거운 폭염의 경제학] 33℃가 가른 유통업계 희비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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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길어지면서 ‘여름 한때 장사’에서 ‘반년 장사’로 상품 개발·마케팅 전략 달라져 #1. 맞벌이 부부인 홍모씨는 여름이면 가족과 외식을 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다. 해가 지고도 30℃ 이상의 고온이 계속되면서 집 안에서 땀 흘리며 음식 장만하는 일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선택한 곳은 아파트단지 앞 대형마트다. 4층 식당가에서 식사를 한 후 매장을 둘러보며 저녁시간을 시원하게 보낸다. 주말이면 홍씨와 같은 가족 단위 손님들로 대형마트는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한낮의 열기가 그대로 남은 맞은편 재래시장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2.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에어컨·선풍기 등 여름철 가전제품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6월 1~18일 에어컨 매출은 지난해 대비 30% 증가했고, 전자랜드에서도 같은 기간 동안 10% 늘었다. 특히 올해도 폭염이 예상되면서 구매 시점이 빨라졌다. 하이마트의 올 1~5월 에어컨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0% 증가했다. 이마트에선 지난 5월 에어컨이 약 290억원 어치 팔리면서 전통적인 인기 상품인 라면(약 190억원) 등을 큰 격차로 제쳤다. 라면이 1위 자리를 놓친 것은 이마트 개점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 쇼핑몰·에어컨·얼음 판매 늘어 최근 몇 해 동안 한반도에 불어 닥친 폭염이 산업계 표정을 바꾸고 있다. 대형마트·쇼핑몰 등은 매출이 고공 행진하며 웃는데 반해 재래시장과 고깃집 등은 울상이다. 특히 올해는 한여름 무더위가 앞당겨지면서 ‘폭염 특수’가 일찌감치 나타나고 있다.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지난 5월 3일 처음으로 섭씨 30도를 넘어섰다. 지난해 기록(5월 19일)보다 약 2주 빠르다. 기상청에 따르면 5~6월 전국에 폭염 특보(33℃ 이상)가 38차례 발령돼 지난해 같은 기간 7차례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올해 6월 기온이 평년수준(21.2℃)보다 높고, 7~8월에도 비슷하거나 높을 것(평년 7월 24.5℃, 8월 25.1℃)이라는 예상이다. 7월 들어 12일까지 이미 7차례의 폭염 특보가 발령됐다.폭염 특수의 대표적인 제품은 냉방가전이다. 최근 폭염주의보가 이어지면서 냉방가전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 인기 모델의 경우 재고 부족으로 설치까지 일주일가량 걸린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특히 에어컨은 올 초부터 판매가 급증했다. 지난해 여름 주문량이 밀리면서 에어컨 구매부터 설치까지 3~4주씩 기다려야 했던 ‘학습효과’가 구매 시기를 앞당기게 한 것이다.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에어컨 판매량이 250만~280만 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140만~150만 대이던 평년 판매량을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 역대 최고인 지난해(220만 대) 판매량을 1년 만에 갈아치울 전망이다. 이는 올해 200만~230만 대로 예상되는 TV 판매량을 추월한 수치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 에어컨 판매 물량의 70~80%가 팔려나갔다”고 말했다.냉방 관련 상품군이 다양해진 것도 눈에 띈다. 6월 23일 오픈마켓 옥션이 최근 한달(5월19일~6월18일) 간 여름철 인기 제품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세컨드 계절가전과 열대야 숙면 용품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에어컨 전기요금을 피하고자 냉방효과를 극대화해주는 세컨드 가전인 써큘레이터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4%나 늘었고, 냉풍기 판매도 124% 증가했다. 또 지난해 인기몰이를 했던 핸디선풍기 역시 찾는 이가 늘어 421%나 급증했다. 반면 가뭄으로 모기 출현이 늦어지면서 모기용품 수요가 크게 줄었다.대신 장마 관련 용품은 저조한 매출을 나타내고 있다. 옥션의 조사에서 5월 27일~6월 26일 한달 간 우산과 제습기 등 장마철 상품의 판매량이 각각 22%, 36% 줄어들었다. 특히 장마철 대표 가전인 제습기는 직격탄을 맞았다. 오기명 옥션 소형 가전팀장은 “때 이른 더위로 여름이 길어진데다 연이은 폭염주의보와 가뭄 등으로 여름 제품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식용얼음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6월 들어 편의점 GS25의 봉지얼음과 얼음컵 매출은 지난해 대비 약 30% 증가했다. 판매 수량에서 2위 생수보다 4배 이상 많다. 편의점 아이스커피 판매량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데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음료나 빙수용으로 얼음만 따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식용얼음 시장 규모는 300억원 수준으로, 올해는 4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음 매출이 급격히 늘자 식용얼음 제조업체들은 설비를 증설하고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얼음시장 점유율 1위인 풀무원은 올해 얼음컵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 하루 50t을 생산하고 있다. ━ 재래시장·고깃집·서민은 힘들고 마케팅업계에선 폭염을 ‘양날의 검’으로 부른다. 폭염으로 특수를 누리는 곳이 있는 반면 매출 감소에 허덕이는 분야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재래시장과 고깃집이다. 서울 도심에 자리한 남대문시장·광장시장 등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데다 폭염까지 덮쳐 오가는 행인이 절반가량 줄었다. 고깃집들도 폭염에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서대문의 한 곱창집 주인은 “날 더운데 누가 불 앞에 앉아 있으려 하겠나. 여름철 대체 메뉴라도 개발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레저·숙박·음식업 등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휴가로 산이나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 여름 특수를 누릴 수 있지만 폭염이 계속되면 야외 활동 자체를 자제하며 이른바 ‘방콕족’이 늘게 된다. 매출 하락 등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너무 더우면 휴가지에 가서도 숙소 안에 주로 있는 등 바깥 활동을 자제하게 된다”면서 “서비스업 등 우리 경제가 ‘바깥 활동’에 기대는 부분이 커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 선선해도 ‘폭염 마케팅’하는 유통업계 폭염은 서민들에겐 달갑지 않다. 장바구니 물가를 흔들기 때문이다. 7월 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안정세로 접어드나 싶던 농산물 가격은 무더위·가뭄에 장마까지 겹치면서 다시 들썩이고 있다. 7월 7일 기준 양파 1kg은 1960원으로, 평년 가격보다 18.9% 높다. 마늘(깐마늘 1㎏, 9535원)은 18.1%, 당근(1kg, 3346원)은 16.4% 비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배추와 무 등도 재반등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과일값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6월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과실물가지수는 118.15로 2013년 5월(118.189) 이후 가장 높았다. 2015년 가격을 100으로 놓고 값을 산출한 결과 7개월 연속 상승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폭염 탓에 작황이 부진했고, 올해 역시 일찍 찾아온 더위에 여름 과일 수요가 늘며 물가 상승 폭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채소 등 농산물 가격도 폭염에는 급등하지만 사람들이 외식 등 소비를 줄이면 다시 가격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원재료 가격 상승은 결국 가공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폭염이 소비를 위축시킨다”고 진단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성태 거시경제연구부장 역시 “마이너스 요인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날씨 좋은 5월에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던 것도 ‘야외 활동이 늘어나 내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였는데 지금은 너무 더워 야외활동이 줄고 있으니 반대효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폭염이 지속되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노동생산성도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하지만 유통업계의 ‘폭염 마케팅’은 뜨겁기만 하다. 실제로 해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 여름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올해가 제일 뜨겁다”는 날씨 마케팅도 관련 상품 매출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4년과 2015년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두 해 모두 평년에 비해 비교적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유통업계는 ‘폭염’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고, 매출 증가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게다가 유통업계의 여름마케팅은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백화점·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은 5월부터 여름행사를 시작했고, 6월에도 더운 날씨 덕에 성수기를 맞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불황을 이기는 마케팅 방법은 할인, 날씨, 희소성 등 다양하다”며 “‘싸게 파니 살까’ 보다는 ‘내게 꼭 필요한가’를 먼저 따지는 합리적인 구매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2017.07.15 08:50

6분 소요
석유난로 세계 1위 파세코 2세 유일한 대표

CEO

석유난로 세계 1위 기업 파세코는 최근 빌트인 가전 브랜드 ‘키친마스터’를 선보이며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 유일한 대표는 파세코의 연구개발(R&A)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 체질개선에 나섰다. 경기도 안산역에서 내려 공단 길을 가로 질러 걷다보니 빨간색 벽에 넝쿨 담쟁이가 무성한 파세코 본사 건물이 나타났다. 공장 한가운데 마당에선 지게차와 화물트럭이 납품할 물건을 바삐 실어 나르고 있다. 사무동 1층 로비에 마련된 쇼룸에 들어서니 파세코의 제품 개발 역사가 한 눈에 보였다. 석유난로에서 시작해 가스스토브·제습기·가스레인지쿡탑·식기세척기·김치냉장고·후드까지 보기좋게 진열돼 있다.파세코는 최근 B2C 사업을 강화하며 빌트인 가전 브랜드 ‘키친마스터’를 선보였다. 배우 홍은희를 모델로 내세워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10월부터는 빌트인 가전업계 최초로 TV광고를 진행한다. 2층 집무실에서 만난 유일한(45) 대표는 “주로 대기업과 건설업체에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납품하다보니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졌다”며 “우리 회사의 제품력을 소비자에게 직접 선보여 ‘역시 빌트인 가전 명가는 파세코야’ 하는 평가가 나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창업자 유병진 회장의 장남인 그는 회사의 체질변화를 주도하며 생활가전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 계절가전·주방가전 투 트랙 전략 파세코는 국내에 몇 남지 않은 석유난로 제조기업이다. 1974년 난로용 심지를 만드는 신우직물공업사로 출발해 난로 완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금은 연간 난로 생산량의 90%를 전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 시장 45%, 중동 시장 60%, 러시아 시장 40% 등 세계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1등 기업이다.유 대표는 “1960년대 후반에 난로 심지를 일본에서 수입하던 부친(유병진 파세코 회장)께서 수입이 막히자 직접 심지 제조를 시작했다”며 “제품에 불량이 생기면 심지 탓을 하는 발주업체의 논리에 맞서기 위해 난로를 연구하시다가 직접 완제품을 만드신 게 파세코의 모태”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중반 정부에선 대기업을 포함해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조사의 석유난로를 거둬들여 테스트 했는데 파세코만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대기업들이 석유난로 시장에서 철수하고 파세코의 블루오션이 시작된 계기였다. 파세코의 심지식 석유난로와 산업용 열풍기는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세계일류상품에 각각 8년, 3년 연속 선정됐다. 소비재 부문에서 중소기업의 제품이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선정되는 일은 드문 일이다.파세코의 사업구조는 석유난로 등 계절가전 분야, 빌트인 등 주방가전 분야로 나뉜다. 계절가전은 수출, 주방가전은 내수 중심으로 매출이 발생하는데 지난해 전체 매출(1381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5대 55로 엇비슷하다. 유 대표는 석유난로 시장을 ‘새옹지마’라고 표현했다. 국제정세와 기후환경 등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지만 꾸준한 캐시 카우(수익창출원)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이라크 수출물량이 줄었지만 그 여파로 주변국에 난민캠프가 늘어나 UN에 납품하는 물량이 늘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남반구 국가의 고온화 현상으로 석유난로 수출이 부진했지만 한파가 몰아친 미국 지역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서 이를 상쇄하고 있어요.” 올 들어 미국 지역 수출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그는 “외신이 남의 일이 아니다. 회사 규모에 비해 글로벌 이벤트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고 말했다.그러나 석유난로 시장은 제품의 특성상 폭발적인 확장세를 갖기 어렵다. 계절적 영향에 따른 수요 변동도 심하다. 한국 IBM을 거쳐 CJ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영화 투자파트장 및 제작팀장을 지내고 2008년 파세코에 전무로 합류한 그가 기존 빌트인 사업을 확장하고 생활가전 분야 자체 브랜드를 통한 B2C 사업에 힘을 쏟기 시작한 이유다. 유 대표는 “석유난로의 계절적 변동성을 빌트인 주방가전 사업으로 잡겠다는 전략”이라며 “B2C 강화로 기업의 브랜드와 인지도를 높여 시장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사실 파세코에게 빌트인 가전 사업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 홈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과 함께 국내에 빌트인 가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1999년 코스닥 상장 후 식기세척기, 김치냉장고 등 빌트인 가전기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03년에는 글로벌 기업인 GE와 국내 중소기업 최초로 완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기식 빌트인 의류관리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 신규 건설용으로는 삼성전자에, 리모델링용으로는 한샘에 빌트인 가전을 ODM 방식으로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 과감한 R&D로 혁신 제품 선보일 것 체질개선의 핵심은 자체 브랜드 론칭을 통한 B2C 사업 강화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대기업 납품 위주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키로 한 것이다. ODM 방식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부터 주방용 레인지후드의 홈쇼핑 판매 등을 통해 파세코의 브랜드파워 상승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 1381억 원 절반 가까운 642억 원을 가스 쿡탑(매립형 가스레인지)과 후드 판매로 거뒀다. 올 들어서도 TV홈쇼핑은 물론이고 전자랜드 프라이스킹 등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후드 판매량은 10만대를 돌파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 대표는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은 인식의 변화에 따른 성과”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주방 부속품에서 환경 가전으로 인식이 확대되면서 소비 증가로 연결됐어요. 또 가격을 낮춰 후드도 매년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보았죠.”유 대표는 레인지후드의 성공적인 시장 진출을 바탕으로 B2C 라인업을 더욱 강화 한다는 방침이다. 제습기·서큘레이터(공기 순환기)·온풍청정기·의류관리기 등 건강 및 환경가전제품 중심으로 사업군을 확대해 생활가전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제품 라인업과 내구성, 기술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지만 소비자들 사이에 브랜드 파워가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것을 개선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장기침체로 리모델링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15년 이상 된 리모델링 대상 주택이 960만 가구 정도 된다고 해요. 요즘 건자재업체들이 홈쇼핑에서 자사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죠. 우리 같은 빌트인 가전업체에겐 기회입니다. 유럽의 밀레, 보쉬처럼 소비자들에게 뚜렷하게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하지만 빌트인 가전 시장도 경쟁이 뜨겁다. 삼성전자가 올 초 ‘셰프컬렉션 빌트인’을 출시하면서 빌트인 가전 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고, LG전자도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앞세운 동부대우전자와 전기레인지에 강한 동양매직과 쿠첸도 빌트인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에서는 4500억 원 수준의 국내 빌트인 가전 시장이 3년 내에 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유 대표는 “국내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이 자사 브랜드로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자신감 하나로 밀어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신감은 파세코의 연구개발(R&D) 역량에서 나온다. 파세코는 2000년부터 기업부설연구소 설립해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해왔다. 직원 중 R&D 인력 비중도 30%에 달한다. 자체적인 금형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어 원가 경쟁력 확보에도 유리하다. 그 덕분에 세계 최초, 국내 최초 개발 제품이 상당하다. 이러한 기술력과 노하우에 마케팅을 제대로 얹혀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부친께서는 늘 ‘사람과 마찬가지로 회사도 시간이 지나면 망한다. 단지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해야 하고, 변화는 과감한 투자에서 나온다는 게 우리 파세코의 DNA이죠. 난로 심지부터 시작해서 의류관리기, 김치냉장고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며 변화해 온 파세코의 역사는 바로 R&D의 역량 덕분입니다.” 기후 변화야 예측할 수 없는 분야지만 인구 감소, 1인 가구의 증대라는 트렌드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만큼 그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로 또 무언가를 저지를 것”이라며 웃었다.- 글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09.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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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열 받을’ 때를 놓치지 마라

산업 일반

▶한 패션업체에서 주최한 가을-겨울 패션쇼. 점점 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옷이 짧아지고 소재가 얇아지는 추세다. 기후는 문화를 바꾸고 산업을 바꾼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구의 명물인 사과가 몇 십 년이 지나면 강원도 양구의 특산물로 변한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로 눈을 돌려 보자. 현재 세계적인 적포도주 산지는 이탈리아다. 향후 50년 동안 이탈리아의 평균 온도가 2도만 올라도 더 이상 이탈리아산 적포도주를 맛볼 수 없게 된다. 대신 독일 라인강 유역과 영국 남부 지역이 적포도주의 최대 산지로 변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점점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는 한반도. 이런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아직까지는 위기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뚜렷한 중·장기적 대응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서서히 국내 기업들이 날씨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은 기후변화를 경영방침에 포함시켜 생산·유통시설 등을 조금씩 변경, 운영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은 기후에 가장 민감한 냉·난방 관련 업계와 음료 등의 식품업계, 각종 의류업계다. 삼성전자는 기후에 민감한 상품인 에어컨, 냉장고 등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능을 추가해 제품 판매율을 높이고 있다. 에어컨의 경우 기존에 추가됐던 공기청정기, 제습기능 등에 ‘열대야 쾌면 기능’을 새로 포함시켰다. 이 기능은 열대야로 밤잠을 못 자는 소비자들을 위해 단순한 냉방기능을 넘어 수면 적정온도를 3단계 과정으로 맞춰준다. 또 냉장고에도 냉장, 냉동 기능을 넘어선 ‘가변형 저장 기능’을 추가했다. 가변형 저장 기능이란 냉장고의 온도를 소비자 임의로 변경해 필요에 따라 냉동고 또는 냉장고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삼성전자 측은 “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성으로 기후가 변경됨에 따라 가전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최대한 더위와 습기를 느끼지 못하도록 제품 설계와 생산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세탁기에는 ‘에어워시’라는 기능을 추가해 황사로 더러워진 옷을 세제가 아닌 공기로 세척할 수 있게 만들었다. ▶1. 열대야 쾌면 기능을 추가한 삼성전자 에어컨. 2. 가변성 저장 기능을 장착한 삼성전자 냉장고. 3. 에어워시 세탁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세탁기. 4. 황사 전용 필터를 설치한 웅진코웨이 공기청정기. 5. 대한항공 임직원들이 몽골 사막에 숲을 조성하고 있다. 6. 귀뚜라미보일러가 생산한 에어컨. 간절기 제품 사라지고 반응상품 늘어 국내 보일러 업계 선두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귀뚜라미보일러도 얼마 전부터 에어컨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5년 에어컨 생산 업체인 범양냉방을 인수해 본격적인 에어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귀뚜라미보일러 조순제 홍보팀장은 “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성 기후로 감에 따라 난방 일수가 줄고 있다. 난방 일수가 준다는 것은 보일러 가동을 전보다 적게 한다는 의미며, 이는 곧 기업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장기적인 기업 생존을 위해 에어컨 생산, 판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웅진코웨이는 자체 생산하는 공기청정기에 황사 전용 필터를 부착했으며, 경동보일러도 최근 에어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식품업계도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대비하는 것은 마찬가지.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상온으로 지속하던 유통 과정에 냉장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롯데제과는 최근 과자와 초콜릿을 운반하는 800여 대의 운반 차량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올 5월 에어컨 설치를 시작해 7월 초에 완료했다. 이 역시 더워지는 기후에 과자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롯데제과 문영태 차장은 “최근 출시한 ‘드림 카카오’라는 제품이 열에 상당히 민감한 상품”이라며 “이를 방지하고 과자의 변질을 막기 위해 차량에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또 롯데제과는 얼마 전부터 과자 유통 때 상품 박스에 열 전도 방지를 위한 스티로폼을 넣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와 해태음료 등 음료 주요 업체들도 상온유통을 줄이고 냉장유통을 확대하고 있다. 다들 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제품의 변질을 우려한 까닭이다. 의류업계에서 가장 큰 변화는 간절기 제품이 사라지고 반응상품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베스띠벨리’ ‘지이크’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신원그룹은 올해 최초로 간절기 상품을 만들지 않았다. 간절기가 짧아지고 워낙 기후변화가 잦기 때문에 과감히 관련 상품 판매를 포기한 것이다. 대신 반응상품 생산량을 전년 대비 30% 이상 늘렸다. 날씨가 더워지면 얇은 소재의 의류를, 갑자기 찬바람이 불면 긴 소매 옷을 바로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에서 운영하는 ‘빈폴레이디스’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날씨 시나리오 기획’을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기획은 지난 2년간의 날씨 변화 추이를 보고 현 시점에서 출고해야 할 상품을 결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반응상품 전략인 ‘JIT(저스트 인 타임)’까지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JIT전략이란 예년처럼 6개월 전부터 상품을 기획하고 시기에 맞춘 상품을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품을 소량 생산해 출시한 후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고 인기가 좋은 의류를 바로 대량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전국 백화점 등 의류매장은 간절기 상품을 전년 대비 최대 30%까지 줄이고 있다. ‘크로커다일 레이디’를 운영하는 형지어패럴은 신상품 기획 주기를 1주일 단위로까지 줄여 반응상품에 즉각 대응하려는 대책을 쓰고 있다. 전자가전이나 의류처럼 기후에 크게 민감한 산업은 아니지만 택배업과 항공업 등도 기상이변과 관련된 대책을 세워 ‘날씨 마케팅’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한진택배는 최근 전국 7300개 편의점 매장과 업무 제휴를 체결했다. 또 인터넷 쇼핑몰과도 업무 제휴를 추진 중이다. 한진택배 한 관계자는 “무더위와 황사로 인해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고 인터넷 쇼핑몰 등을 이용해 쇼핑한다는 점을 공략했다”며 “매년 10% 이상의 물류 운송량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황사가 심하면 비행기 운항에 큰 차질을 빚는다. 황사가 심한 3~4월이 되면 항공기 이륙시간이 지연된 경우가 몇 차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항공은 황사 방지 차원에서 몽골 사막 등지에 숲을 조성해주는 사업을 2004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신원그룹의 발 빠른 대응 “날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시오” 2004년 신원그룹 회의실.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을 비롯한 몇몇 임원은 매출 감소와 관련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신원의 매출액이 계속 감소했으며 특히 2004년에는 전년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매출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오?”(박성철 회장)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봄, 가을 상품이 기대 이하로 나가고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관계부서 임원) “봄, 가을 상품이 기대 이하라니요?” “봄과 가을이 짧아지면서 소비자들이 이 계절의 옷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럼 어서 대책을 강구하고, 앞으로 급변하는 날씨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시오.” 박 회장은 이 같은 지시를 결론으로 회의를 마쳤다. 그의 지시는 의류 매출이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니 이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기업 매출과 직결되는 기상이변에 좀 더 신경 쓰라는 의미였다. 신원은 여성 의류 브랜드인 ‘베스띠벨리’와 ‘비키’, 남성 의류 브랜드 ‘지이크’ 등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이후 신원그룹의 고민이 시작됐다. 급변하는 기후에 민감하고 적극적인 반응책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온 상태였다. 봄, 가을 상품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을 집중 공략하면 된다는 것이다. 신원그룹 판매팀은 봄, 가을 의류를 예년보다 30%가량 줄였으며, 상품기획팀에서는 폭우와 더불어 온난화에 대비할 수 있는 옷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신원 관계자는 “비가 오는 날은 매출이 최대 40% 이상 떨어진다”고 날씨와 의류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설명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신상품 기획과 생산으로 매출액은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증가한 것. 2005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7억원이나 늘었다. 하지만 신원은 멈추지 않았다.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여름 의류 출고량을 늘렸으며 겨울 옷의 소재를 교체했다. 이 소재는 추위를 막는 기능을 약화시키고 활동성을 강화한 옷감이었다. 또 2006년 간절기 상품 생산량을 2005년 대비 40%가량 줄였다. 대신 반응상품(계절이나 기후에 맞춰 바로 내놓아야 하는 상품) 생산량을 2004년 5%에서 30% 이상 늘렸다. 반응상품을 출시한 이유는 지속되는 무더위 중에도 5일 이상 비가 내리거나 어느 순간 찬 바람이 닥치기 때문이었다. 신원의 이러한 전략은 지난해 연말 바로 증명됐다. 2006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6억원, 영업이익이 23억원 늘었다. 지난 3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원그룹은 현재 기후변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상품을 팔고 있다. 점점 생산량을 줄여오던 간절기 상품을 올해는 단 한 점도 생산하지 않았다. 신원 측은 “당장 내일의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다 간절기가 거의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 상품 판매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예년 8월 말이나 9월 초 같으면 가을 의류가 전 매장을 차지했지만 요즘은 매장 의류 중 10%가량을 옷감이 얇은 옷이나 반팔 등 여름 상품으로 채워놓고 있다. 언제 갑자기 더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날씨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매출에 반전을 맞았던 신원그룹은 온난화로 더워질 때를 대비해 소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신원 측은 “점점 지구가 더워진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미래 전망을 고민한 끝에 특정 의류를 개발하기보다 온도 상승에도 더위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소재를 개발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귀뚜라미보일러의 사업 다각화 “이젠 여름이 두렵지 않다” ▶귀뚜라미보일러의 에어컨 제조공장. 귀뚜라미보일러는 보일러 업계 1위다. 보일러를 하루에 3000대가량 생산하면서 국내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이면 국내 1위는 물론이고 생산량과 기술력 측면에서 세계 어느 기업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보일러 하나로 먹고살기에 큰 지장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큰 고민이 생겼다. 날씨가 점차 더워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보일러를 찾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바로 기업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다. 수요가 사라지면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 당시 이동국 귀뚜라미보일러 회장은 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으로 매출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내내 머리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도저히 보일러 하나로는 회생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지자 보일러가 안 팔린다. 그럼 더워지는 날씨에 맞는 상품을 찾아야겠구나. 더워지는 날씨에 맞는 상품이라…. 그렇지! 에어컨이 있었구나.” 결국 이 회장은 에어컨으로 승부를 보자고 결심했다. 보일러와 에어컨. 둘은 전혀 관계 없어 보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최고의 콤비였다. 보일러가 잘 안 팔리는 여름에는 에어컨을 팔면 되는 것이고, 에어컨이 잘 안 팔리는 겨울에는 보일러를 판다는 전략이었다. 귀뚜라미보일러는 2003년 센추리 에어컨 아산공장을 인수하고,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에어컨 생산 업체인 범양냉방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연일 내림세를 걷던 회사 매출이 급상승한 것이다. 2006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00억원, 당기순익은 100억원가량 뛰었다. 귀뚜라미보일러 측은 “부족한 수익원을 정반대 사업군인 에어컨에서 찾은 전략이 적중했다”며 “이제 무더위 등의 기상이변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컨을 만드는 아산공장은 올여름이 더 더웠다고 한다. 올 6~7월에 판매된 에어컨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에어컨 매출보다 28%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때 이른 무더위와 열대야 등으로 길어진 여름이 에어컨 판매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는 보일러가 잘 안 팔리는 여름이 밉지 않다”고 말했다. 길어진 여름을 이용해 회사의 위기를 벗어났던 귀뚜라미보일러는 또 한 번의 날씨마케팅 이용을 심각히 고려 중이다. 바로 환기 부문. 황사 등 기상이변이 닥치면 실내 환기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귀뚜라미보일러가 주력상품인 보일러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보일러 생산과 판매는 내수보다는 수출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 7월 이스탄불에 세운 합작공장 생산품을 시발점으로 2010년까지 터키, 그리스 등에서 2억 달러를 벌겠다는 목표다. 3년 내 5만~10만 대를 판매목표로 정했다. 장기적으로 유럽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2007.09.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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