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우위 韓조선, 관세 협상 카드로 부상
정부도 적극 활용 ...조선 업계는 청신호
대규모 투자에 기술, 일자리 유실 우려도

28일 재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 협력이 타결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예정일은 내달 1일이다. 이날 기준 단 4일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정부는 유예 기한이 임박한 만큼, 그 전에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먼저 미국을 방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잇따라 미 행정부 주요 인사들과 회동하며 막판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대행과 각각 면담했고, 하루 전에는 뉴욕에서 러트닉 장관과 추가 협의를 진행했다.
아울러 당초 25일로 예정됐으나 연기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간 고위급 통상 협의도 이번 주 중으로 조율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정부가 미국에 수십조 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구상을 공식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한미 산업장관 회동 자리에서, 미국 조선업 재건을 목표로 하는 대형 협력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회동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자택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 장관이 이날 제안한 이른바 마스가(MASGA) 프로젝트’(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는 미국 내 조선업 부흥을 위해 한국 민간 조선사의 현지 대규모 투자와 함께, 국내 정책금융기관의 대출·보증 등 금융지원 패키지를 포함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총 규모 수백억 달러, 한화로 수십조 원대에 이르는 투자 청사진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MASGA’라는 프로젝트 명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조해온 산업 재건 기조와 맞물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는 이번 제안이 조선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과 조선 인프라 복원이 절실한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전략적 상생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다방면에서 협상 타결을 위한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이 이번 협상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조선 산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국 조선업 재건’(MSGA) 기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돈 쏟아붓는 日과 구체적인 韓
미국의 관심이 ‘조선산업’에 쏠려있다 보니, 일본도 구애에 나섰다. 일본의 무기는 돈이다. 백악관 팩트시트를 살펴보면, 일본은 미국과 총 5500억 달러(약 720조원) 규모의 전략적 무역·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은 일본이 미국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미국은 일본산 수입품에 대한 기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백악관은 이번 협정을 통해 일본의 투자 대상 산업 중 하나로 ‘상업 및 방위 조선업’을 명시했다. 에너지·반도체·의약품 등과 함께 조선업이 전략적 산업으로 꼽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본 측 자금은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과 기존 조선 인프라의 현대화에 투입될 전망이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조금 더 구체적인 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국내 조선 ‘빅3’인 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과 협의해 구체적인 조선업 협력 방안을 마련한 뒤 미국 측에 제시할 방침이다. 여기에는 현지 건조·기술 이전·인력 양성 등 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산업 카드는 한국에게도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협상에서의 조선업 협력이 단순한 외교적 양보에 그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한국 조선업을 협상 카드로 활용함으로써, 미국 내 고부가가치 선종 수주 확대는 물론, 장기적인 산업 연계를 통해 한국도 실질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맥킨지 앤 컴퍼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향후 30년간 최소 290척에서 최대 340척에 달하는 해군 함정 건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국방 예산도 2020년대 들어 연평균 12.5%가량 증가하며 조선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를 뒷받침할 조선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울러 미국의 조선 생산량은 1950년대 대비 85% 이상 감소했다.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 수는 80% 이상 줄어들었다. 현재 미국이 직접 건조하는 상업용 선박은 전 세계 생산량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5%대를 차지했던 위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 기술력에서 경쟁우위를 지닌 한국 입장에선, 미국 시장 진출과 협력의 여지를 확대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현재 상선, 쇄빙선, LNG선 등 핵심 선종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한국 조선사 입장에선 미국 시장이 오히려 확장되는 기회이기 때문에, 이번 협력이 손해가 될 일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조선산업은 외교적 양보 수단이 아닌, 활용 수단”이라며 “한국 조선산업이 미국에 진출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조건으로, 관세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고, 미국 진출을 통해 기술력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 한국 조선의 수출 물량도 덩달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기술 유출과 국내 고용 창출 기회 상실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조선업이 미국 시장에 무분별하게 진출할 경우, 국내 일자리 감소는 물론, 주요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관세 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아주 좋은일”이라면서도 “다만, 조선업뿐 아니라 여러 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해외에 하게 되면, 국내에서 창출될 수 있었던 고용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트럼프 2.0 시대의 국제 무역 질서는 더 이상 상식이나 규범이 아닌, 미국이 정한 룰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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